1778년 홍언철(洪彦喆) 고신(告身)

ㆍ자료UCI: KNU+GWKSMC+KSM-XA.1778.1111-20170501.201600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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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작성주체 발급 : 정조 이산(李蒜)
수취 : 홍언철(洪彦喆)
· 작성지역 한성부
· 작성시기 乾隆四十三年(1778)
· 형태사항 56.0 X 72.3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10.5*10.5, 施命之寶)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78년(정조 2) 정조홍언철(洪彦喆)어모장군(禦侮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에 임명하는 내용의 고신(告身)이다.
어모장군은 무관 정3품 품계이고, 용양위부호군은 용양위에 소속된 종4품 관직이다.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붙인 것은 임명자의 품계가 수여받는 관직보다 높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른 것이다.
문서의 발급일은 건륭(乾隆) 43년 8월이며, 일자는 기재하지 않았다. 연호 위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찍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78년(정조 2) 정조洪彦喆禦侮將軍 行龍驤衛副護軍에 임명하는 내용의 告身이다.
어모장군은 무관 정3품 품계이고, 용양위부호군은 용양위에 소속된 종4품 관직이다. 관직명 앞에 '行'자를 붙였는데, 이는 임명자의 품계가 수여받는 관직보다 높기 때문에 行守法에 따른 것이다. 용양위는 조선시대 중앙군사 조직인 五衛 중 左衛를 말하며, 한성부의 東部와 경상도 지역의 군사가 이 부대에 소속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실질적 군사업무가 훈련도감 등으로 이전되면서 이름만 남아 실직이 없는 문무반에게 봉급을 주기 위한 職으로 변모하였다.
고신은 임금이 신하에게 관직을 내리는 임명장으로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구분된다. 4품 이상 고신은 임금이 직접 내리는 임명장이고, 5품 이사의 고신은 臺諫의 署經을 거쳐 이조나 병조에서 내리는 임명장이다. 홍언철의 품계로 보아 이 고신은 4품 이상 고신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신의 형식은 경국대전 예전의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 규정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문서 첫 행에 임금이 내리는 문서임을 나타내는 敎旨를 기재하고, 문서 중앙에는 임명자의 이름과 수여받는 품계 및 관직을 적는다. 문서 말미에는 문서 발급연월일을 기재하고, 연호 위에 施命之寶를 찍는다. 문서의 발급일자 옆에 본문의 글씨보다 작은 글씨로 임명사유를 적는 경우도 있는데, 문관일 경우에는 발급일자 좌측에, 무관일 경우에는 우측에 기재한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문서의 발급일은 乾隆四十三年 八月로 일자는 기재하지 않았지만 승정원일기를 통해 발급일을 확인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 정조 2년 8월 24일 기사의 내용을 보면 홍언철呂善亨尹行晉 등과 함께 부호군으로 제수하고 있어 이 고신 역시 이때 발급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춘천 남양홍씨 가문에서 소장한 문서로 이 고신 외에도 홍언철과 관련된 문서가 다수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홍언철기유(1729)생으로 34세 때 생원・진사시에 동시에 합격하였고, 1763년(영조 39)에 시행된 大增廣別試에서 文科丙科 제20인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待敎掌令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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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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