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7년 홍언철(洪彦喆) 고신(告身)

ㆍ자료UCI: KNU+GWKSMC+KSM-XA.1767.1111-20170501.20160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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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작성주체 발급 : 영조 이금(李昑)
수취 : 홍언철(洪彦喆)
· 작성지역 한성부
· 작성시기 乾隆三十二年(1767)
· 형태사항 56.6 X 78.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10.5*10.5, 施命之寶)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67년(영조 43)영조홍언철(洪彦喆)조산대부(朝散大夫) 행예문관대교(行藝文館待敎) 겸춘추관기사관(兼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한 고신(告身)이다.
홍언철이 임명받은 조산대부는 문관 종4품의 품계이고, 예문관대교는 예문관의 정8품 관직이다. 임명자의 품계보다 관직이 낮아 행수법(行守法)에 의거하여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붙였다. 겸직인 춘추관기사관정6품에서 정9품에 이르는 관원에게 수여하는 관직이다.
문서의 발급일은 건륭(乾隆) 32년 정월 9일이며,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다. 문서의 뒷면에는 '이리(吏吏)김창석(金昌碩)'이라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67년(영조 43)영조洪彦喆朝散大夫 行藝文館待敎 兼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한 告身이다.
홍언철이 임명받은 조산대부는 문관 종4품의 품계이고, 예문관대교는 예문관의 정8품 관직이다. 임명자의 품계보다 관직이 낮아 行守法에 의거하여 관직명 앞에 '行'자를 붙였다. 춘추관기사관은 대개 예문관봉교 이하가 겸직하도록 되어 있어 홍언철 역시 예문관대교로 임명하면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토록 한 것이다.
고신은 임금이 신하에게 관직을 내리는 임명장으로,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구분된다. 4품 이상 고신은 임금이 직접 내리는 임명장이고, 5품 이하 고신은 臺諫의 書經을 거쳐 이조나 병조가 내리는 임명장이다.
경국대전 예전의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 따르면 문서 첫 행에 임금이 내리는 문서임을 뜻하는 敎旨를 기재하고 문서의 중앙에는 임명자의 이름과 수여받는 품계 및 관직을 적는다. 문서 말미에는 문서의 발급연월일을 쓰고 그 위에 施命之寶를 찍으며, 발급연월일 좌우에 작은 글씨로 임명사유를 적는 경우도 있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형식에 맞추어 작성되었는데 문서의 발급일은 乾隆三十二年 正月 初九日이다.
홍언철은 이와 같은 내용의 고신을 여러 통 발급받았다. 1766년 8월 12일에 처음으로 조산대부 행예문관대교 겸춘추관기사관으로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아 빨리 오라는 내용의 上來有旨도 발급되었다. 동년 12월에도 같은 내용의 고신과 상래유지가 발급되었다. 그리고 이 문서가 발급된 지 두 달 뒤인 3월에도 같은 고신이 발급되었는데, 이를 통해 홍언철은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문서의 뒷면에는 '吏吏金昌碩'이라 기재되어 있어 문서의 작성자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고신 외에도 홍언철과 관련된 문서는 다수 현전한다. 이에 따르면 홍언철기유(1729)생으로, 1763년(영조 39)에 시행된 大增廣別試에서 文科丙科 제20인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홍언철待敎掌令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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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차미희, 조선후기 문과 급제자의 분관, 한국사학보6, 고려사학회, 1999
집필자 :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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