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고종 13) 8월 고종이 申一永을 通訓大夫 行弘文館修撰 知製敎 兼經筵檢討官 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한 告身이다.
고신에는 교지, 교첩, 추증교지, 백패, 홍패 등의 여러 종류가 있는데 교지는 4품 이상의 관직을 임명할 때 내리는 문서이다. 이 문서는 신일영의 품계로 보아 4품 이상 고신에 해당하며, 문서의 형식은 경국대전 예전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의 규정에 맞게 작성되었다. 문서의 첫 머리에 '敎旨'를 명시했고, 본문에 신일영을 통훈대부 행홍문관수찬 지제교 겸경연검토관 춘추관기사관으로 임명하는 내용을 기재했다. 통훈대부는 정3품의 품계이고, 홍문관수찬은 홍문관의 정6품 관직으로 지제교, 경연관을 겸임하였다. 춘추관기사관은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던 사관으로 타관들이 겸직하였다. 임명받은 품계보다 관직이 낮기 때문에 行守法에 의거하여 관직명 앞에 '行'자를 붙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발급일자를 기재했다. 발급일은 '光緖二年 八月 日'로 일자를 기재하지 않았는데, 승정원일기 고종 13년 8월 16일 기사에서 신일영을 수찬에 제수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문서의 발급일은 16일임을 알 수 있다. 施命之寶는 연도 위에 찍었다.
문서의 뒷면에는 '吏吏吳命煥'이 기재되어 있어 문서의 작성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 吏吏는 고신을 작성하는 이조의 서리인 吏曹政色書吏를 말한다. 춘천 평산신씨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는 신일영의 고신 30건 중 23건에서 오상묵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평산신씨대동보(1989)에 기록된 신일영의 자는 大敬이다. 幼學 申幾善의 아들로 을사년(1845)에 태어나 壬申庭試丙科(1872)에 입격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무술년(1898)에 사망하였다. 韓山李氏와 혼인하여 슬하에 아들 申澤秀, 申凡秀, 申民秀, 申吉秀를 두었다.
참고문헌
柳池榮,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韓國學中央硏究院 博士學位論文, 2014
전경목,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휴머니스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이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