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철종 7) 3월 철종이 申常顯을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兼五衛將으로 임명한 告身이다.
조선시대 임명장은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분류된다. 4품 이상 고신은 臺諫의 署經없이 왕명으로 발급하는데 절충장군은 정3품의 품계이므로 이 문서는 4품 이상 고신에 해당한다.
고신의 문서형식은 경국대전 예전의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서의 첫 머리에는 임금이 내리는 문서임을 뜻하는 '敎旨'를 기재하고, 문서 중앙에는 임명자의 이름과 품계 및 관직을 적는다. 문서 말미에는 발급연월일을 기재하는데, 연호 위에는 施命之寶를 찍는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형식에 맞추어 작성되었다. 문서의 처음에 '敎旨'를 기재하였고, 다음 행에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겸오위장으로 임명한 내용을 기재했다. 절충장군은 정3품의 품계이고, 첨지중추부사는 중추부의 정3품 관직이다. 오위장은 조선시대 군사조직인 오위의 으뜸 벼슬로 정3품의 관직이다. 마지막 행에는 '咸豊六年 三月 日'로 발급일자를 적었다.
이 문서에는 施命之寶가 찍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吏曹書吏가 작성한 초본으로 추정된다.
평산신씨대동보(1989)에 따르면 신상현은 幼學 申㦉의 아들로 자는 寧世이며, 호는 歸菴이다. 신상현은 정유년(1777)에 태어나 乙丑增廣試(1805)에 입격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고, 갑자년(1864)에 사망하였다. 驪興閔氏와 혼인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 아들은 申應朝이다.
참고문헌
柳池榮,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韓國學中央硏究院 博士學位論文, 2014
전경목,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휴머니스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이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