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58년(영조 34) 영조가 申埜를 通訓大夫 行宗親府典簿로 임명한 告身이다.
조선시대 임명장은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분류된다. 4품 이상 고신은 臺諫의 署經없이 왕명으로 발급하는 반면, 5품 이하 고신은 대간의 서경을 거쳐 吏曹 또는 兵曹에서 발급한다. 신야가 임명받은 통훈대부는 정3품으로 이 문서는 4품 이상 고신에 해당한다.
4품 이상 고신의 형식은 경국대전 예전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 규정되어 있는데 이 문서 역시 그 형식을 따르고 있다. 문서의 서두에는 국왕의 명령을 의미하는 '敎旨'를 쓰고, 행을 바꾸어 신야를 통훈대부 행종친부전부로 임명한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통훈대부는 정3품 下階이고, 종친부전부는 조선시대 역대 국왕의 계보와 초상화를 보관하며 국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고 종실을 감독하던 관청인 종친부의 정5품 관직이다. 품계에 비해 관직이 낮았기 때문에 行守法에 의거하여 관직명 앞에 '行'자를 붙였다. 마지막 행에는 문서의 발급일자를 명시했는데 발급일자는 '乾隆二十三年 五月 二十五日'이고, 연호와 연도 위에 施命之寶를 찍었다.
평산신씨대동보(1989)에 따르면 신야는 정축년(1697)에 태어나 기묘년(1759)에 사망하였다. 신야는 加平郡守를 지낸 申錫華의 아들로 安東金氏와 혼인하여 슬하에 아들 申景翰과 申景嶽을 두었다.
춘천 평산신씨 가문에 현전하는 신야의 임명관련 문서는 15건이 존재하는데, 이 문서는 신야가 받은 마지막 고신이고, 사망하기 1년 전에 받은 문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柳池榮,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韓國學中央硏究院 博士學位論文, 2014
전경목,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휴머니스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이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