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699년(숙종 25) 3월 25일 幼學 申錫華가 進士試에 入格한 사실을 증명하는 白牌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大科와 小科로 나뉜다. 대과는 文科나 武科 또는 양과를 합하여 이르는 말로 及第하면 紅牌를 발급 받았고, 소과는 生員과 진사를 뽑는 시험으로 입격하면 백패를 발급 받았다.
백패의 작성양식은 경국대전 예전 '白牌式'에 규정되어 있는데, 이 문서도 이러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문서의 첫머리에 '敎旨'를 써서 임금의 명령에 의해 발급된 문서임을 나타내고, 다음 행에 유학 신석화가 진사시 3등 62인에 입격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마지막 행에는 문서의 발급일자가 기재되어 있는데, 연호와 연도 사이에 科擧之寶를 찍었다.
문서에 따르면 신석화는 유학의 신분으로 진사시를 치렀다. 생원・진사시는 100명을 선발하는데, 1등 5명, 2등 25명, 3등 70명을 선발하므로 신석화는 전체 92위로 합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서의 뒷면에는 황색 종이를 덧붙여 '幼學申錫華進士三等第六十二人'이라 기재하여, 진사시 입격자의 신분, 이름 및 성적을 표시하고 있다.
평산신씨대동보(1989)에 따르면 신석화는 임자(1672)생으로 자는 天賚이고, 長興主簿, 戶曹佐郞, 가평군수 등을 역임했으며, 갑오년(1714)에 사망하였다. 대동보에는 신석화의 부인으로 2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驪興閔氏는 府院君 閔維重의 딸로 신해(1671)생이며, 병술년(1706)에 사망하였고, 全州李氏는 무진(1688)생으로 갑자년(1744)에 사망하였다. 슬하에 2남 4녀가 있었는데, 아들은 戶曹正郞 申埜와 申壆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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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이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