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2년(영조 8) 영조가 申埜를 朝散大夫 行顯陵參奉으로 임명한 告身이다.
조선시대 임명장은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분류된다. 4품 이상 고신이 臺諫의 署經없이 왕명으로 발급하는 반면, 5품 이하 고신은 대간의 서경을 거쳐 吏曹 또는 兵曹에서 발급한다. 신야가 임명받은 조산대부는 종4품의 품계이기 때문에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고신에 해당한다.
이 문서는 경국대전 예전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 규정되어 있는 형식을 따른다. 문서의 첫 행에는 '敎旨'를 기재하고, 다음 행에 신야를 조산대부 행현릉참봉에 임명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조산대부는 종4품의 품계이고, 현릉참봉은 현릉을 관리하던 종9품 관직이다. 신야가 제수받은 품계에 비해 관직이 낮기 때문에 '行守法'에 의거하여 관직명 앞에 '行'자를 명시하였다. 마지막 행에는 발급일자인 '雍正十年 八月 初十日'를 쓰고 연호와 연도 사이에 施命之寶를 찍었다. 그리고 발급일 좌측에는 작은 글씨로 '壬八別加'라 追記하여 발급사유를 밝혔다.
임팔별가는 壬자가 들어간 해에 별가한 것을 말하는데, 이는 1732년 임자년 8월 별가하였다는 것이다.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사에 따르면 영조는 宣懿王后의 3년상이 끝난 뒤 祔祭를 행하였고 인정전에 나가 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이에 頒赦하고 백관을 加資하겠다는 전교를 내렸는데, 이때에 신야는 별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문서의 뒷면에는 '吏吏吳復興'이 기재되어 있어, 문서의 작성자가 吏曹政色書吏 吳復興임을 알 수 있다.
문서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글씨가 흐리게 보인다.
참고문헌
柳池榮,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韓國學中央硏究院 博士學位論文, 2014
전경목,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휴머니스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이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