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66년(고종 3) 고종이 申應朝를 嘉善大夫 行龍驤衛護軍 兼五衛都摠府副摠管으로 임명한 告身이다.
조선시대 임명장은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분류된다. 4품 이상 고신은 臺諫의 署經없이 왕명으로 발급하는 반면, 5품 이하 고신은 대간의 서경을 거쳐 吏曹 또는 兵曹에서 발급한다. 가선대부는 종2품이므로 이 문서는 4품 이상 고신에 해당한다.
4품 이상 고신의 형식은 경국대전 예전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 규정되어 있고, 이 문서 역시 이러한 형식에 맞추어 기재되어 있다. 문서의 첫 행에 '敎旨'를 명시했고, 다음 행에 신응조를 가선대부 행용양위호군 겸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임명한 내용을 기재했다. 가선대부는 종2품 下階의 품계이고, 용양위호군은 조선시대 군사조직인 五衛 중 하나로 左衛를 맡고 있는 용양위의 정4품 관직이다. 제수받은 품계에 비해 관직이 낮기 때문에 行守法에 의거하여 관직명 앞에 '行'자를 붙였다. 오위도총관부총관은 오위를 지휘・감독한 최고 군령기관인 오위도총부의 종2품 관직이다. 마지막 행에는 '同治五年 六月 日'을 기재했다. 발급일자는 기재되지 않았지만 승정원일기 고종 3년 6월 기사를 보면 신응조가 부총관의 관직에 제수받은 기사가 있어 이 문서의 발급일은 6월 7일로 추정할 수 있다. 施命之寶는 연도 위에 찍었다.
신응조의 고신에는 이 문서와 같은 가선대부 행용양위호군 겸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임명한 고신이 1개 더 있어, 같은 해, 같은 달에 같은 관직으로 2번 임명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평산신씨대동보(1989)에 기록된 신응조는 갑자(1804)생으로 자는 幼安이고, 호는 桂田・苟菴이며 부친은 敦寧都正을 지낸 申常顯이다. 1828년(순조 28) 乙酉式年文科初試에 합격하여 70여년의 관직생활을 하였다.
참고문헌
柳池榮,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韓國學中央硏究院 博士學位論文, 2014
전경목,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휴머니스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이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