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고종 3) 9월 고종이 申應朝를 兼藝文館提學으로 임명한 告身이다.
해당 문서는 품계가 없고 관직만 명시되어있다. 신응조의 임명관련 문서를 보면 1866년 6월 嘉善大夫 行龍驤衛護軍 兼五衛都摠府副摠管과 同知敦寧府事 兼同知春秋館事를 임명받았고, 7월에는 兼同知義禁府事를 임명받았다. 이로보아 신응조는 위의 관직을 임명받고 예문관제학도 겸직하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문관제학은 조선시대 칙령과 교명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예문관의 종2품 관직이다.
이 문서에는 품계가 적혀 있지 않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품계가 종2품 가선대부인 것으로 짐작되며, 문서의 형식이나 연관문서를 보면 4품 이상 고신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문서의 첫 머리에 '敎旨'를 명시했고, 다음 행에 신응조를 겸예문관제학에 임명한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마지막 행에는 문서의 발급일자를 기재했는데 발급일은 '同治五年 九月 日'로 날짜는 기재하지 않았다. 연호와 연도 사이에 施命之寶를 찍었다.
문서의 뒷면 좌측하단에는 '吏吏吳命煥'이 적혀 있다. 이리는 고신을 작성하는 이조의 서리로 오명환이 이 문서의 작성자임을 알 수 있다.
평산신씨대동보(1989)에 따르면 신응조(1804~1899)의 자는 幼安이고, 호는 桂田・苟菴이며 洪直弼의 문인이다. 신응조는 1828년(순조 28) 乙酉式年文科初試에 합격했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강원도관찰사, 예조판서, 판부사 등을 역임했으며 후에 좌의정에 올라 奉朝賀가 되어 耆老所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柳池榮,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韓國學中央硏究院 博士學位論文, 2014
전경목,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휴머니스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이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