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신응조(申應朝) 고신(告身)

ㆍ자료UCI: KNU+GWKSMC+KSM-XA.1845.1111-20180501.20170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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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작성주체 발급 : 헌종 이환(李奐)
수취 : 신응조(申應朝)
· 작성지역 한성부
· 작성시기 道光二十五年(1845)
· 형태사항 54.0 X 77.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10.0*10.0, 施命之寶)
· 원소장처 춘천 평산신씨
· 현소장처 춘천 평산신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845년(헌종 11) 12월 27일 헌종신응조(申應朝)봉렬대부(奉列大夫) 행상서원부직장(行尙瑞院副直長)으로 임명하는 고신(告身)이다.
봉렬대부는 문관 정4품 하계(下階)의 품계이고, 상서원부직장은 옥새와 마패 등을 비롯하여 임금의 명령을 상징하는 각종 물건들을 관리하던 관청인 상서원의 정8품 관직이다. 제수받은 품계에 비해 관직이 낮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명시하였다.
문서의 뒷면에는 작성자인 이조정색서리(吏曹政色書吏) 오상묵(吳相默)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1845년(헌종 11) 12월 27일에 헌종申應朝奉列大夫 行尙瑞院副直長으로 임명하는 告身이다.
조선시대 임명장은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분류된다. 4품 이상 고신은 臺諫의 署經없이 왕명으로 발급하는 반면, 5품 이하 고신은 대간의 서경을 거쳐 吏曹 또는 兵曹에서 발급한다. 봉렬대부정4품 하계의 품계이므로 이 문서는 4품 이상 고신에 해당한다.
4품 이상 고신의 형식은 경국대전 예전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 규정되어 있고, 이 문서 역시 이러한 형식에 맞추어 기재되어 있다. 먼저 문서의 첫 머리에 '敎旨'가 명시되어 있고, 다음 행에 신응조봉렬대부 행상서원부직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봉렬대부는 정4품 東班 文官에게 주던 품계이고, 상서원부직장은 조선시대에 璽寶(옥새와 옥보)・符牌(병부・순패・마패)・節鉥(신표와 대부)을 관장하던 기관인 상서원의 정8품 관직이다. 제수받은 품계에 비해 관직이 낮기 때문에 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行'자를 명시하였다. 문서의 발급일은 '道光二十五年 十二月 二十七日'로 연도 위에 施命之寶를 찍었다.
문서의 뒷면 하단에는 '吏吏吳相默'이 기재되어 있어 문서의 작성자를 확인할 수 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하는 이조의 서리를 뜻하며, 그 중에서도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吏曹政色書吏를 가리킨다. 이리가 문관의 고신을 작성했다면 무관의 고신은 兵曹政色書吏가 담당했는데, 이들은 병리 혹은 병정리라 불리었다.
현전하는 신응조의 고신 65건 중 문서의 뒷면에 작성자가 기재된 경우는 32건이고, 이 중 오상묵이 기재된 것은 12건, 吳命煥이 기재된 것은 20건이다. 모두 吳씨 성을 가진 이가 작성한 것으로 보아 신응조 집안의 임명 문서의 단골리는 오씨 성을 가진 자 임을 알 수 있다.
신응조가 발급 받은 고신 중 본 문서와 발급일자가 같은 날인 고신이 1건 존재하는데, 그 문서에는 신응조奉正大夫 行尙衣院別提로 임명한다고 되어 있다.
평산신씨대동보(1989)에 따르면 신응조의 자는 幼安, 호는 桂田・苟菴이며 洪直弼의 문인이다. 신응조1828년(순조 28) 乙酉式年文科初試에 합격했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후에 좌의정에 올라 奉朝賀가 되어 耆老所에 들어갔다. 가족은 처 坡平尹氏, 아들 申幾善이 있다. 부친은 敦寧都正 申常顯이며, 조부는 幼學 申㦉, 증조부는 通德郞 申景翰, 외조부는 監役官 閔景爀이다.
참고문헌
柳池榮,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韓國學中央硏究院 博士學位論文, 2014
전경목,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휴머니스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이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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