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음력 3월 17일 金東先이 鏡洛會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문서의 작성연도는 병오로 기재되어 있다. 강릉시라는 지명을 사용한 시기가 1955년이고, 南門洞은 1946년에 개칭된 사실을 통해 이 간찰은 1966년도에 작성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피봉 앞면에는 경락회원 여러분에게 보낸다고 하였고, 뒷면에는 발신인의 주소인 江陵市 南門洞 龐寓 169와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본문에서는 먼저 경포대에서 작년 7월에 한 번 이별하였고 이번 봄 낙산에서 모임의 횟수를 세어보니 14번째 모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회가 14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선은 雲庵이 별세하였다고 들었는데, 이 무슨 변고이냐고 하며 운암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들지 못했으나 중심을 살펴보면 실로 인간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운암의 성품을 칭찬하였다.
이어 이번 봄 꽃 구경 모임의 참여자 수가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현하면서 자신이 가지 못해 불참금 100전을 朴東隱 편에 부치니 이를 받고 너그럽게 용서해주신다면 이번 가을에 있을 경포대 모임에서 염파장군처럼 가시를 짊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많지만 편지지가 다되고 붓도 몽당처럼 되어 이것으로 그만두고 일일이 다하지 않으니 넓게 헤아려 달라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이 편지를 받은 경락회원이 누구인지 기재하지 않았으나, 이 문서의 소장처가 양양 제주고씨 가문임을 생각해보면 高光斗임을 알 수 있고, 이 편지를 고광두가 받은 점으로 미루어 경락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고광두는 1959년 간행된 제주고씨문영공파보의 서문을 작성한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