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년(壬午年) 홍중(弘中) 간찰(簡札)

ㆍ자료UCI: KNU+GWKSMC+KSM-XF.0000.0000-20200501.20190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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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 : 홍중(弘中)
· 작성시기 壬午
· 형태사항 20.3 X 39.7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원소장처 양양 제주고씨
· 현소장처 양양 제주고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임오년 5월 12일 홍중(弘中)이 보낸 편지이다.
홍중은 상을 당한 수신인을 위로하고 가뭄, 조카의 혼례, 갚아야 할 물건 등 다양한 소식을 전하였다. 갚아야 할 물건은 보낼 수 없게 되었다며 농사가 조금 덜 바쁜 뒤에 찾아뵈려고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상세정보

임오년 5월 12일 弘中이 보낸 편지이다.
간찰은 오늘날의 편지로 안부, 소식, 용무 등의 내용을 적어 주고받는 글로 조선시대에는 書札・書簡 등으로도 불리었다. 간찰은 봉투인 피봉과 내지로 이루어졌으며, 書頭, 候問, 自叙, 述事 그리고 結尾의 형식을 갖추어 내용을 구성한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 여백에 이어 적고,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 간찰 또한 이러한 규칙에 맞춰서 내용을 상 여백에 작성하고 결미 부분은 간찰의 우측 여백에 작성하였다.
훙중은 막힌 감회가 이때보다 더한 때가 없다는 인사말로 시작하고 있다. 이어 비록 錦里에 사는 皐音 편에 편지를 받지 못했으나 그 편에 조용히 잘 지내고 어린 조카 남매도 별 탈 없이 모두 편안하다니 그리움이 크다고 전하였다. 자신은 부모 모시는 형편이 우환이 많아 근심스럽지만 어린애들이 무탈하니 다행이라고 근황을 전하였다.
이 간찰은 상을 당한 수신인을 위로하고 가뭄, 조카의 혼례, 갚아야 할 물건 등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먼저 금리의 喪事는 순리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궁핍한 가을에 모든 일이 손을 댈 여지가 없겠지만 모든 절차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 것이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또한 농사도 자신이 지내는 곳은 가뭄으로 재해를 입었는데 형 또한 풍년은 아닐 터이니 땅이 갈리지는 것은 면하였는지 걱정을 하고 있다.
어린 조카의 혼례를 가을에 치른다고 기재하였는데 그 뒤의 상황은 글자가 잘려 있어서 확인이 어렵다. 홍중은 어떠한 물건을 보내는 것이 허사가 되었고, 그 밖에 갚아야 할 물건을 아직 돌려보내지 못했는데 살림살이를 돌아보니 저절로 궁핍한 것이 많다고 하며 여기에 사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농사가 조금 덜 바쁜 뒤에 한 번 찾아뵈려고 하나 부모를 모시고 지내기 때문에 미리 기약할 수는 없다고 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참고문헌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15
문창호, 簡札의 安否人事에 대한 類型, 東洋古典硏究 57, 동양고전학회, 2014
한석수, 사대부 간찰의 형식과 투어 연구, 개신어문연구 34, 개신어문학회, 2011
이인숙, 조선시대 편지[簡札]의 문화사적 의의, 민족문화논총 30,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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