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년 아무개 간찰(簡札)

ㆍ자료UCI: KNU+GWKSMC+KSM-XF.0000.0000-20200501.201900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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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수취 : 고광두(高光斗)
· 작성시기 [일제강점기]
· 형태사항 20.4 X 17.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원소장처 양양 제주고씨
· 현소장처 양양 제주고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미상년 음력 4월 19일에 종숙(從叔)이 고광두(高光斗)에게 보낸 간찰이다.
종숙이 고광두로부터 받은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와동(瓦洞)의 일은 이미 알고 있고, 옥구(沃溝)에서 온 편지에 대해서는 재종씨와 여러 사람과 의논하여 물어보라고 하였다. 공무의 편지를 거론하여 현판에 이름 새기는 일 또한 조상을 위한 큰 일이나 조처가 어려우니 숙고하여 잘 의논하라고 하였다. 이어 40원이 생길 것이니 11월까지 빌려 쓸 것을 제안하고 가뭄으로 모내기 때를 놓쳤다는 근황을 전하였다.

상세정보

미상년 음력 4월 19일에 從叔이 高光斗에게 보낸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발신인과 고광두의 관계는 발신인을 '從叔'이라고 지칭한 것을 통해 당숙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편지의 작성시기는 고광두의 활동시기와 화폐단위가 圓인 것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편지임을 알 수 있다.
서두에서 어제 도착한 편지에서 안부를 이미 알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당숙은 이전에 고광두에게 편지를 받고 그에 대한 답장으로 이 편지를 작성한 것이다. 이어 瓦洞의 일은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면서 市便은 불행 중 다행으로 마음에 실로 기뻤는데, 그 다음의 沃溝에서 온 편지를 보고 송구스럽기가 그지없었다고 하였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모두 10원의 돈으로 입을 막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하며, 영동사람은 분수만 알고 의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여 부끄럽고 한탄스럽다고 꾸짖었다. 이와 관련해서 재종씨와 여러 사람과 의논하여 물어보라고 하였다.
公武의 편지 중에 가산을 쏟아 부어 파산하는 정성이 있으며 여기에 새길 수 있다고 하였고, 누구나 자손인데 어찌 정성이 있고 없는지 알겠냐고 적었다. 만약 나를 각각 현판에 새기면 어떠하고 새기지 않으면 어떠하겠냐며 조상을 위하는 일은 이보다 큰 것이 없지만 실제로 조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숙고하여 잘 의논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어 지난번 전에 온 편지를 생각하다가 分處를 말한다면 40원이 생길 것이니 11월까지 빌려 쓰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제안을 하며 光秀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는 모내기를 해야 하나 가뭄 때문에 때를 놓쳤다고 하며 옥구에서 온 편지를 함께 보내는 것으로 용건을 마무리 하였다. 옥구전라북도 군산 일대에 있던 지명이다.
참고문헌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15
문창호, 簡札의 安否人事에 대한 類型, 東洋古典硏究 57, 동양고전학회, 2014
한석수, 사대부 간찰의 형식과 투어 연구, 개신어문연구 34, 개신어문학회, 2011
이인숙, 조선시대 편지[簡札]의 문화사적 의의, 민족문화논총 30,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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