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2월 10일 吳世台가 사돈인 高光斗에게 보낸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이 편지는 현대문서이나 조선시대 간찰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간지나 서기연도가 적혀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음력 2월이라 한 것과 고광두의 연관문서를 통해 이 문서도 1950년 이후의 문서로 짐작된다. 그리고 오세태가 자신을 '査弟'라고 지칭한 것을 통해 고광두와 사돈지간임을 알 수 있다.
편지봉투인 피봉을 통해 오세태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上道門里로 이곳은 지금의 속초시 도문동 상도문리이고, 고광두는 손정리에 사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손정리는 현재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이다.
오세태는 먼저 새해 한 번 보고나서 어느덧 달이 바뀌어 초승달이 되었다고 인사말을 한 뒤, 지내는 형편이 좋기를 바란다고 하며 자신은 여전하지만 어머니의 숨소리가 끊어질 듯하여 밤낮 걱정하고 있다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이어 편지의 핵심내용을 적었는데 이 달 18일에 손자가 혼례 날짜를 들이는 날이니 만사 제쳐두고 오셔서 빛이 나게 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추신으로는 숙부인 李雪岡에게 바빠서 편지를 쓰지 못했으니 편지를 함께 보고 같이 와달라고 하여 고광두가 이설강과 이웃하며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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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호, 簡札의 安否人事에 대한 類型, 東洋古典硏究 57, 동양고전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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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조선시대 편지[簡札]의 문화사적 의의, 민족문화논총 30,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