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김병혁(金秉爀)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70.4215-20160501.201500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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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수취 : 김병혁(金秉爀)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道光十七年(1870)
· 형태사항 43.5 X 52.1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6.3*6.3,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3.5*7.5,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 현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37년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에서 북이리면(北二里面) 교동리(校洞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병혁(金秉爀)에게 발급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김병혁의 당시 나이는 41세로 정사(179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처 안동권씨(安東權氏)는 36세이며 아들인 동몽(童蒙) 김문연(金文演)은 12세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총 13구(口)이다.

상세정보

1837년(헌종 3) 江陵大都護府에서 幼學 金秉爀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준호구의 작성방식을 살펴보면 호의 주소와 주호, 주호의 사조사항, 처와 아들에 대해 列書하였고, 노비는 連書하였다.
문서에 따르면 김병혁北二里面 校洞里에 거주하였는데 統과 戶의 수는 기재하지 않았다. 김병혁은 당시 41세로 정사(179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김병혁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金學胤이고, 생부는 유학 金宗霖이며, 조부는 학생 金啓澤이다. 증조부는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金昌載이고, 외조부는 학생 權星度로 본관은 안동이다. 김병혁의 사조사항에 기재된 생부를 통해 김병혁은 부친인 김학윤의 양자임을 알 수 있으나, 부친과 생부의 관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처와 아들이 기재되어 있다. 처 權氏는 36세로 임술(1802)생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아들은 童蒙 金文演으로 나이는 12세이고 병술(1826)생이다. 아들에 대한 내용은 전 식년에 발급된 준호구에는 기재되지 않았고 이 문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아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1828년에 준호구를 발급받았을 때부터 아들이 함께 살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준호구에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딸이나 어린 자녀의 경우 준호구에 기재하지 않고 성년이 지나거나 혼인을 했을 경우에 호구문서에 기록하는 관행에 따른 것이다.
김병혁이 소유한 노비는 총 15구가 기재되어 있다. 노비의 이름이나 출생 간지를 수정한 흔적이 확인되는데 문서에는 이러한 수정 사항이 반영되지 않고 형식적으로 周挾改印을 찍었다. 또한, 官印과 都護府使의 署押, 문서를 대조, 확인하였다는 의미의 準자를 붉은 글씨로 기재하였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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