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김병혁(金秉爀)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55.4215-20160501.2015000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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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수취 : 김병혁(金秉爀)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咸豊五年(1855)
· 형태사항 49.5 X 54.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7*7.7,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3.5*4.5,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 현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55년(철종 6)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에서 신리면(新里面) 교항리(橋項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병혁(金秉爀)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김병혁은 당시 나이는 59세이고 정사(1797)생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처 안동권씨(安東權氏)는 기재되어 있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구성원으로 큰 아들 김교연(金敎演)과 며느리 강릉최씨(江陵崔氏), 작은 아들 김주연(金做演)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55년(철종 6) 江陵大都護府에서 幼學 金秉爀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준호구의 작성방식을 보면 주호의 인적사항과 가족관계, 사조사항, 소유한 노비 등의 내용을 連書하는데, 이 준호구에서는 주호와 가족구성원에 대한 내용은 호구단자와 같이 列書하고 소유한 노비는 連書하여 호구단자의 형식을 띈 준호구로 보인다.
문서에 따르면 김병혁의 거주지는 新里面 橋項里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전에 발급받은 준호구에서는 北二里面 校洞里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거주지가 다르게 기재된 것으로 보아 북이리면에서 신리면으로 이주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병혁의 나이는 당시 59세 정사(1797)생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金秉爀1843년에 발급된 준호구에서는 金秉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다시 김병혁으로 이름을 바꾸어 기재하고 있다.
김병혁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金學胤이고, 생부는 유학 金宗霖이며, 조부는 학생 金啓澤이다. 증조부는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金昌載이며, 외조부는 학생 權星度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이전 준호구까지 나왔던 처 안동권씨에 대해서는 기재하지 않고 있어 권씨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구성원으로 큰 아들 朴敎演과 며느리 江陵崔氏, 둘째 아들 朴做演이 기재되어 있다. 박교연은 나이가 30세 병술(1826)생이고, 며느리 최씨는 36세 경진(1820)생으로 처가 6살 연상이다. 둘째 아들 童蒙 김주연의 나이는 15세로 신축(1841)생이다.
문서에 기재된 소유노비의 수는 모두 10口인데, 그 중 사망한 노비는 1구이다. 노비를 기재한 부분에 도할한 자국이 확인된다.
문서를 보면, 주호에 대해 기재한 행의 첫 머리에 朱墨으로 점을 찍었고, 戶數는 四戶로 기재한 것을 붉은 글씨로 二자로 고쳐 두었다. 大都護府의 署押이 있고 周挾改印을 찍었으며 그 옆에 대조, 확인하였다는 의미의 準자를 기재하였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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