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4년 江陵大都護府에서 幼學 金昌載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조선시대 준호구는 자신의 신분 및 재산, 가계도를 확인하는 지금의 주민등록등본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가문에서 관에 신청하고 관은 호적대장을 토대로 준호구를 발급하여 준다.
이 문서에 따르면 김창재는 북면 이리 산황리 제1통 5호에 거주하고 있다. 김창재의 나이는 61세로 갑오(1714)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부친은 通政大夫 金泰柱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守聲이며, 증조부는 學生 金檜樑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晦로 본관은 강릉이다. 처 安氏는 임인(1722)생으로 53세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안씨의 부친은 유학 安如岳이고, 조부는 학생 安瑛이며, 증조부는 통정대부 安應禎이다. 외조부는 학생 鄭度昌으로 본관은 동래이다.
함께 살던 仲父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金衡柱는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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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