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7년 江陵大都護府에서 갑자식년에 작성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정묘식년에 幼學 金泰柱에게 발급한 準戶口이다.
강릉김씨 가문의 문서는 총 39건으로 1735년부터 1885년까지 작성되었으며, 호구단자 1건을 제외한 나머지 38건은 준호구이다. 이를 주호별로 분류하면 金泰柱 3건, 金昌載 14건, 金漢鎭 3건, 金啓贇 2건, 金秉爀 8건, 金秉鼎 1건, 金演敎 1건, 金演斗 2건, 金演八 5건이다. 이 준호구는 김태주가 주호로 기재된 마지막 문서이다.
이 준호구에 따르면 김태주는 당시 나이 81세로 山皇里에 거주하고 있다. 또한 주호 김태주의 사조사항을 기재하였다. 김태주의 부친은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守聲이고 조부는 學生 金檜樑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金鋼이다. 외조부는 통정대부 崔泰暹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처에 대한 기재는 이전 문서인 1744년 준호구에 사망사실이 기재되어 있어 1747년 준호구에는 처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지 않았다.
아들은 유학 김창재가 있으며 나이는 34세로 갑오(1714)생이다.
소유 노비는 총 31口인데 이중 도망노비 1구, 사망한 노비 1구, 외거노비 29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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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