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94년 江陵大都護府에서 을묘식년에 작성한 호구장적을 토대로 通政大夫 金昌載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강릉 강릉김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호구 문서는 총 39건으로 모두 준호구이다. 작성시기는 1735년부터 1885년까지로 150여년에 걸쳐 있다. 주호별로 살펴보면 金泰柱 3통, 김창재 14통, 金漢鎭 3통, 金啓贇 2통, 金秉爀 9통, 金演敎 1통, 金演斗 2통, 金演八 5통이 있다.
문서에 의하면 김창재는 北二里面 洪濟里에 거주하였다. 김창재는 갑오(1714)생으로 당시 82세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이전에 발급된 준호구에서 김창재의 직역은 幼學이었는데 이 문서에서는 통정대부로 기재되고 있다. 이는 老職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김창재의 부친은 通政大夫 김태주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守聲이다. 증조부는 學生 金檜樑이고 외조부는 學生 崔晦로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구성원은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데 아들 유학 김한진은 신사(1761)생으로 35세이고 그의 처 平海黃氏는 경진(1760)생으로 36세이다.
소유한 노비는 26口로 그 중 도망간 노비는 1구이고, 외거노비는 21구이다.
이 문서는 준호구임에도 불구하고 연호와 가족사항을 열서로 기재하고 있다. 이처럼 18세기 이후 일부지역에서는 준호구임에도 불구하고 호구단자처럼 가족사항을 별행으로 기재하는 문서가 나타나고 반대로 호구단자임에도 준호구와 같이 연서하여 기재하는 문서가 등장한다. 즉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문서 양식이 혼용되어 사용된 것인데 최근 연구 성과에 따르면 문서작성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는 문서의 형식뿐만 아니라 용도까지도 혼용되기에 이른다. 이 문서 또한 이러한 변화양상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거주지 주소의 기재사항위에 주점이 찍혀 있고 문서의 좌측하단에 주묵으로 '準'이라고 써서 호구대장과 확인을 마쳤음을 표시하였다. 문서 왼쪽 상단에는 강릉부사의 署押이 보이고 문서 좌측 하단에는 周挾改印이 찍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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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