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김창재(金昌載)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80.4215-20160501.201500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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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수취 : 김창재(金昌載)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乾隆四十五年(1780)
· 형태사항 61.0 X 54.7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5.4*5.4,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6.2*5.4,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 현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780년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에서 경자식년에 작성한 호구장적을 토대로 유학(幼學) 김창재(金昌載)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김창재갑오(1714)생으로 당시 67세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구성원은 처 순흥안씨(順興安氏), 아들 유학 김한용(金漢鏞), 며느리 평해황씨(平海黃氏)가 있다.
소유한 노비는 28구(口)로 그 중 도망간 노비는 3구이고, 외거노비는 22구이다.

상세정보

1780년 江陵大都護府에서 경자식년에 작성한 호구장적을 토대로 幼學 金昌載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강릉 강릉김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호구 문서는 총 39건으로 모두 준호구이다. 작성시기는 1735년부터 1885년까지로 150여년에 걸쳐 있다. 주호별로 살펴보면 金泰柱 3통, 金昌載 14통, 金漢鎭 3통, 金啓贇 2통, 金秉爀 9통, 金演敎 1통, 金演斗 2통, 金演八 5통이 있다.
김창재北面二里面 洪濟里 제1통에 거주하는데 통수는 孫有同이고 통내 제4호에 거주하고 있다.
김창재1780년 이전에 발급받은 준호구에 의하면 김창재山皇里에서 거주하였으나 이 준호구부터 거주지가 洪濟里로 기재되어 있다.
김창재갑오(1714)생으로 당시 67세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부친은 通政大夫 金泰柱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守聲이며, 증조부는 學生 金檜樑이다. 외조부는 學生 崔晦로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구성원은 처와 아들이 있는데 처 順興安氏임인(1722)생으로 59세이다. 안씨의 부친은 유학 安如岳이고, 조부는 학생 安瑛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安應禎이다. 외조부는 학생 鄭度昌으로 본관은 동래이다. 아들 유학 金漢鏞은 20세 신사(1761)생이고, 그의 처 平海黃氏경진(1760)생으로 21세이다.
소유한 노비는 28口로 그 중 도망간 노비는 3구이고, 외거노비는 22구이다.
이 문서는 준호구임에도 불구하고 호구단자의 양식인 열서로 기재하고 있다. 이처럼 18세기 이후 일부지역에서는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문서 양식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최근 연구 성과에 따르면 문서작성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 문서 또한 이러한 변화양상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거주지 주소의 기재사항위에 주점이 찍혀 있고 문서의 좌측하단에 주묵으로 '準'이라고 써서 호구대장과 확인을 마쳤음을 표시하였다. 문서 왼쪽 상단에는 강릉대도호부사의 署押이 보이고 문서 좌측 하단에는 周挾改印이 찍혀 있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 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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