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년 江陵大都護府에서 갑술식년에 작성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신묘식년에 幼學 金昌載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조선시대 준호구는 자신의 신분 및 재산, 가계도를 확인하는 지금의 주민등록등본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가문에서 관에 신청하고 관은 호적대장을 토대로 준호구를 발급하여 준다.
이 문서에 따르면, 주호 김창재의 나이는 58세로 갑오(1714)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부친은 通政大夫 金泰柱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守聲이며, 증조부는 學生 金檜樑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晦로 본관은 강릉이다.
처 安氏는 50세로 본관은 순흥이다. 안씨의 부친은 유학 安如岳이고, 조부는 학생 安瑛이며, 증조부는 통정대부 安應禎이다. 외조부는 학생 鄭度昌으로 본관은 동래이다.
함께 거주하는 仲父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金衡柱의 나이는 102세로 경술(1670)생이며 仲父의 처 郭氏는 기축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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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