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4년 김태주(金泰柱)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44.4215-20160501.201500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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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김태주(金泰柱)
수취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乾隆九年(1744)
· 형태사항 57.3 X 50.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3 (적색, 정방형, 8.7*8.7,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5.3*5.1,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 현소장처 동해 강릉김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744년 북이리면(北二里面) 산황리(山篁里)에 사는 유학(幼學) 김태주(金泰柱)가 가족원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당시 김태주의 나이는 78세로 정미(166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처 강릉최씨(江陵崔氏)는 사망하였다. 가족으로는 아들 유학 김창재(金昌載)가 있다.

상세정보

1744년 北二里面 山篁里에 사는 幼學 金泰柱가 가족원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본래 호구단자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간지를 사용하고 가족구성원의 기재사항을 별행으로 기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김태주가 제출한 호구단자의 경우에는 간지를 적지 않고 연호를 기재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호구단자의 서식이 준호구와 모호해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강릉김씨 가문의 호구단자 및 준호구는 모두 39건으로 호구단자 1건을 제외한 나머지 38건은 준호구이다. 이를 주호별로 분류하면 金泰柱 3건, 金昌載 14건, 金漢鎭 3건, 金啓贇 2건, 金秉爀 8건, 金秉鼎 1건, 金演敎 1건, 金演斗 2건, 金演八 5건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강릉부 북이리 산황리에 거주하는 김태주는 당시 나이 78세로 정미(166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부친은 老職 通政大夫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守聲이고 조부는 學生 金檜樑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金鋼이다. 외조부는 통정대부 崔泰暹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김태주의 妻는 崔氏이나 본 준호구에는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솔거자녀로는 아들 유학 金昌載가 있는데 나이는 31세로 갑인(1712)생이다. 이 준호구에는 1735년 김태주의 준호구에 기재된 김창재의 동생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김태주가의 총 노비의 숫자는 31口인데 그 중 죽은 노비는 1구이고 도망간 노비 1구, 외거노비 29구이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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