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 강릉대도호부에서 을유식년에 작성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幼學 金泰柱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강릉김씨 가문의 호구단자 및 준호구는 모두 39건으로 호구단자 1건을 제외한 나머지 38건은 준호구이다. 이를 주호별로 분류하면 金泰柱 3건, 金昌載 14건, 金漢鎭 3건, 金啓贇 2건, 金秉爀 8건, 金秉鼎 1건, 金演敎 1건, 金演斗 2건, 金演八 5건이다. 이 문서는 강릉김씨 가문의 호구단자 및 준호구 중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강릉부 북이리 산황리에 거주하는 김태주의 당시 나이 69세로 정미(1667)생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부친은 老職 通政大夫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守聲이고 조부는 學生 金檜樑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金鋼이다. 외조부는 通政大夫 崔泰暹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김태주의 妻는 崔氏로 본관은 강릉이며 나이는 62세로 갑인(1674)생이다. 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晦이고 조부는 학생 崔大信, 증조부는 통정대부 崔仁偉이며 외조부는 학생 朴世咸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처와 모친, 그리고 동생 2명이 있다. 모친 淑夫人 崔氏는 95세이나 본관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첫째 동생 유학 金衡柱는 66세 경술(1670)생이고, 둘째 동생 유학 金恒柱는 64세 임자(1672)생이다. 솔거자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이보다 늦게 작성된 1744년 호구단자를 보면 아들 유학 金昌載가 기재되어 있다.
김태주의 총 노비의 숫자는 31口인데 그 중 죽은 노비는 1구이고 도망간 노비 1구, 외거노비 28구이고 소유하고 있는 노비의 1구뿐이다. 하지만 노비의 기재에서 노비 대다수가 고령으로 기재되고 論德의 나이가 62세인데 論德의 4소생 喜達의 나이가 67세로 기재되는 것을 봤을 때, 이 가문의 노비 기재는 허수로 작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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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