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 김태주(金泰柱)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35.4215-20160501.201500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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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수취 : 김태주(金泰柱)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雍正十三(1735)
· 형태사항 57.3 X 50.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3 (적색, 정방형, 7.6*7.6,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9.8*3.6,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 현소장처 강릉 강릉김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35년 강릉도호부(江陵都護府)에서 북이리면(北二里面) 산황리(山皇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태주(金泰柱)에게 발급해준 준호구로 오늘날의 호적등본에 해당되는 문서이다.
김태주는 당시 나이 69세로 정미(166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어머니, 처(妻), 그리고 동생이 2명 있다. 어머니 숙부인(淑夫人) 최씨(崔氏)의 나이는 95세이고 부인 최씨는 나이는 62세로 갑인(1674)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동생이 2명 있는데 첫째는 유학 김형주(金衡柱)로 나이는 66세로 경술(1670)생이고, 둘째는 유학 김항주(金恒柱)로 64세로 임자(1672)생이다.

상세정보

1735년 강릉대도호부에서 을유식년에 작성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幼學 金泰柱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강릉김씨 가문의 호구단자 및 준호구는 모두 39건으로 호구단자 1건을 제외한 나머지 38건은 준호구이다. 이를 주호별로 분류하면 金泰柱 3건, 金昌載 14건, 金漢鎭 3건, 金啓贇 2건, 金秉爀 8건, 金秉鼎 1건, 金演敎 1건, 金演斗 2건, 金演八 5건이다. 이 문서는 강릉김씨 가문의 호구단자 및 준호구 중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강릉부 북이리 산황리에 거주하는 김태주의 당시 나이 69세로 정미(1667)생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부친은 老職 通政大夫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守聲이고 조부는 學生 金檜樑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金鋼이다. 외조부는 通政大夫 崔泰暹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김태주의 妻는 崔氏로 본관은 강릉이며 나이는 62세로 갑인(1674)생이다. 최씨의 부친은 학생 崔晦이고 조부는 학생 崔大信, 증조부는 통정대부 崔仁偉이며 외조부는 학생 朴世咸으로 본관은 강릉이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처와 모친, 그리고 동생 2명이 있다. 모친 淑夫人 崔氏는 95세이나 본관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첫째 동생 유학 金衡柱는 66세 경술(1670)생이고, 둘째 동생 유학 金恒柱는 64세 임자(1672)생이다. 솔거자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이보다 늦게 작성된 1744년 호구단자를 보면 아들 유학 金昌載가 기재되어 있다.
김태주의 총 노비의 숫자는 31口인데 그 중 죽은 노비는 1구이고 도망간 노비 1구, 외거노비 28구이고 소유하고 있는 노비의 1구뿐이다. 하지만 노비의 기재에서 노비 대다수가 고령으로 기재되고 論德의 나이가 62세인데 論德의 4소생 喜達의 나이가 67세로 기재되는 것을 봤을 때, 이 가문의 노비 기재는 허수로 작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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