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74년(영조 50) 5월 20일에 영조가 李馨德을 奉列大夫 行宗簿寺主簿로 임명하는 告身 이다.
고신은 조선시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임명장으로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구분된다. 4품 이상 고신은 임금이 직접 내리는 임명장이고, 5품 이하의 고신은 臺諫의 書經을 거친 뒤 왕명을 받아 이조 또는 병조에서 임명하였다. 이 문서는 이형덕이 받은 봉렬대부가 정4품 하계이므로 4품 이상 고신에 해당한다.
고신의 형식은 경국대전 예전의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 실려 있다. 문서의 첫머리에는 국왕의 명령을 의미하는 敎旨를 쓰고, 본문에는 행을 바꿔 '某爲某階某職者'라고 기재하여 관직을 받는 대상자와 임명받는 품계와 관직을 명시한다. 문서의 말미에는 발급일자를 중국연호로 기재한다. 4품 이상 고신은 국왕이 발급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어보인 施命之寶를 연호 위에 찍는다. 임명사유가 있을 경우 대상자가 문관이면 연호 좌측에 적고, 무관이면 연호 우측에 적는다.
이 문서도 역시 이러한 형식에 맞춰 기재되어 있다. 서두에 '敎旨'라 적고 본문에 행을 바꿔 이형덕을 봉렬대부 행종부시주부로 임명한다고 기재 되어 있다. 이 문서의 발급일은 '乾隆三十九年 五月 二十日'이다. 이형덕이 임명받은 봉렬대부는 정4품 하계의 품계이고, 종부시주부는 종실의 행실 등을 규찰하는 종부시의 종6품 관직이다. 따라서 관직명 앞에 '行'을 붙여 行守法을 적용하였음을 명시하였다.
한산이씨문열공파세보에 의하면 이형덕의 생년은 1722년(경종 2)이고 몰년은 1784년(정조 8)이다. 이형덕의 부친은 李鼎漢이고 조부는 李埈이다. 이형덕은 전처 鎭川宋氏가 사망한 후에 安東權氏와 재혼하였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이형덕은 1765년(영조 4)에 乙酉式年 文科에서 丙科 18인으로 급제하였다. 이외에 이형덕이 받은 고신들을 살펴봤을 때, 이형덕은 宗簿寺主簿, 禮曹正郞, 司諫院正言, 忠武衛副司正 등을 역임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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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求福, 고문서 용어풀이 고신, 古文書硏究 22, 한국고문서학회,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