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노계명(盧啓明)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01.4671-20180501.201700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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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담양부(潭陽府)
수취 : 노계명(盧啓明)
· 작성지역 담양부
· 작성시기 嘉慶陸年(1801)
· 형태사항 35.2 X 52.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潭陽府印)
1 (흑색, 장방형, 14.0*7.1, 周挾改字印)
· 원소장처 담양 광산노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1801년(순조 1) 담양부(潭陽府)에서 신유년(1801)에 성적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유학(幼學) 노계명(盧啓明)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 준호구는 신유년(1801)에 성적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주호 노계명은 당시 55세로 정묘(1747)생이고, 본관은 광산이다. 거주지는 담양부 용천동면(龍泉洞面) 월계리(月桂里)로 이 지역은 지금의 담양군 용면 월계리 일대에 해당한다. 가족으로는 처 한양조씨(漢陽趙氏)와 아들 노팔원(盧八元)이 있다.
노비는 도망간 여자종 1구(口)가 있다.

상세정보

1801년(순조 1) 潭陽府에서 幼學 盧啓明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 준호구는 신유년(1801)에 성적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주호 노계명은 당시 55세로 정묘(1747)생이고, 본관은 광산이다. 거주지는 담양부 龍泉洞面 月桂里로 이 지역은 지금의 담양군 용면 월계리 일대에 해당한다.
노계명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老職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盧漢鳳이고, 조부는 學生 盧一玖이며, 증조부는 학생 盧俶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수원학생 白漢範이다.
가족으로는 처 漢陽趙氏와 아들 盧八元이 있다. 처 한양조씨는 당시 나이가 51세이고, 신미(1751)생이다. 처의 부친은 학생 趙聖垕, 조부는 학생 趙昌彦, 증조부는 학생 趙世貞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초계학생 崔宗岳이다.
아들 노팔원은 23세로 기해(1779)생이다. 연관문서에 따르면 노팔원1804년 부친 노계명이 사망하자 대신하여 주호가 되었다. 그런데 1807년 준호구에 이름을 盧致璇으로 개명하고, 사조사항에 부친을 백부 盧啓昌으로, 생부를 노계명으로 기재한 것으로 보아 1804년1807년사이에 백부 노계창의 양자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가족구성에 관한 기재가 끝난 후에는 행을 구분하지 않고 노비를 기재하였다. 노비는 도망간 여자종 1口가 있다. 노비의 이름과 도망간 지역을 밝히고 있으나 나이와 생년은 기재하지 않았다.
문서의 말미에는 '戊午式戶口自首印'이라 기재하여 무오식년(1798)의 호구와 비교・대조하였음을 밝히고 그 위에 周挾改印을 찍었다. '自首'는 당해 호구단자에 처음 나타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호적단자에 새로이 등재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문서의 좌측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있고, 우측 연호 위에는 官印이 찍혀 있어 관의 확인을 받은 문서임을 밝혔다.
이 호적단자는 문서의 말미에 보이는 尊位 河某가 확인・대조하고 着名하였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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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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