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조두석(趙斗錫) 간찰(簡札)

ㆍ자료UCI: KNU+GWKSMC+KSM-XF.1925.0000-20210501.202000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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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 : 조두석(趙斗錫)
· 작성시기 乙丑(1925)
· 형태사항 18.1 X 73.5 | 1장 | 종이 | 한문 | 낱장
· 원소장처 원주 이정동
· 현소장처 원주 이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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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정보

이 문서는 1925년 12월 21일 조두석(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상 중에 있는 조두석은 사돈의 안부를 묻고 해산한 딸과 손자 그리고 소상(小祥)을 치를 시기가 다가오는 자신의 근황을 전한 뒤 인편을 보내 박곡(朴谷)의 상기를 알아보고, 그 편에 목화를 찾아볼 계획이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925년 12월 21일 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書信・書札・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지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을 기록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候問・自敍・述事・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에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이 간찰도 이러한 양식을 맞춰서 작성하였고, 이를 통해 당대에도 조선시대 간찰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두석이 자신을 '査弟罪人'라고 하였는데 사제란 사돈 사이에서 자신을 칭하는 말로, 이 단어를 통해 수신인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사제는 '査小弟'・'査契'・'査丈'・'査生' 등과 같은 의미이다. 더불어 죄인이라는 표현을 통해 조두석이 부모상을 치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을 보면 조두석은 한 해가 저물고 있어 그리움이 다른 때와 비교할 수 없다는 말로 간찰을 시작했다. 사돈이 지내는 형편이 좋고, 부모 모시며 형제가 화목하고 미봉할 일이 괴롭게 하지 않은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祥期가 다가오고 있어 통탄스러우며 외부모님께서 추위로 손상되기 쉬운 상황이고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다고 하였다. 사위는 공부를 잘하고 있으며 딸도 출산 후 큰 탈이 없으나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근황을 전하였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점차 사람의 모습이 되니 볼수록 기특한데 외손이라 섭섭하다고 했다. 사람을 朴谷에 보내서 상기를 알아보고 그 편에 목화를 찾아볼 계획이라고 하였다.
간찰을 작성한 때는 상기가 다가오는 시점이었는데, 상기는 小祥과 大祥으로 나뉜다. 소상은 사람이 죽은 지 1년째 되는 날 지내는 제사이고 대상은 모든 상례 절차가 끝났음을 알리는 제사이다. 조두석이 아직 상중에 있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제 소상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찰의 내용을 통해서는 부친상인지 모친상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24년 12월 말을 전후한 시기에 상을 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연관문서를 통해 을축년1925년임을 알 수 있다. 조두석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은 모두 26건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간찰은 시기순으로 나열했을 때 20번째 문서이다.
참고문헌
김효경, 조선후기 간찰의 피봉 서식 연구, 고문서연구 31, 고문서학회, 2007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백낙천, 조선후기 한글간찰의 형식과 내용, 한말연구18, 한말연구학회, 2006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집필자 :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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