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조두석(趙斗錫 ) 간찰(簡札)

ㆍ자료UCI: KNU+GWKSMC+KSM-XF.1921.0000-20210501.20200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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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 : 조두석(趙斗錫)
· 작성시기 辛酉(1921)
· 형태사항 22.6 X 42.1 | 1장 | 종이 | 한문 | 낱장
· 원소장처 원주 이정동
· 현소장처 원주 이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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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정보

이 문서는 1921년 12월 15일에 조두석(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을 작성한 이유는 內行 일정을 정하기 위해서이다. 조두석은 사돈이 내행 날짜를 잊은 건 아닌지 물으며 1월 29일 새벽 일찍 출발해 하동산점(下東山店)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당일에 비가 오면 그 다음날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921년 12월 15일에 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書信・書札・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지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을 기록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候問・自敍・述事・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에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이 간찰도 이러한 양식을 맞춰서 작성하였다.
수신인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두석이 자신을 '査弟'라고 하였는데, 사제란 사돈 사이에서 자신을 칭하는 말로, 이 단어를 통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사제는 '査小弟'・'査契'・'査丈'・'査生' 등과 같은 의미이다.
내용을 보면 조두석은 지난번에 돌아가는 인편으로 간찰을 받아 보셨겠지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에 어긋나 한스러운 마음을 잡기 어렵다며 간찰을 시작했다. 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내는 형편이 정중하고, 다소 미봉한 일로 인해 괴롭지는 않은지 사위와 자기 딸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여전해서 지난 간찰과 달리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으나 이번 겨울 방학에 여행 중인 아우와 객지의 자식이 보러 오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근황을 전하였다.
조두석이 사돈에게 간찰을 보낸 이유는 內行 일정을 정하기 위해서이다. 조두석은 혹시 사돈께서 내행 일정을 잊은 건 아닌지 물으며 1월 29일 새벽 일찍 출발해 下東山店에서 기다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고, 만약 그날 비가 오면 그 다음날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이날로 정한 이유는 온 산에 눈이 쌓이고, 연말이 멀지 않은 데다가 정월 초에 바닷가로 문상가려고 하니 그 이전 날짜는 거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어 빈손으로 인편을 보낸 것은 오래 끊긴 연락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며 간찰을 마쳤다. 추신으로 致伯 형의 큰 집, 작은 집 모두 편안한지 물으며 간찰을 보내야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 붓을 들지 못했다고 하였다.
연관문서를 통해 이 문서의 작성연도인 신유년1921년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조두석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은 모두 26건이 있으며, 이 간찰은 시기순으로 나열했을 때 9번째 문서이다.
참고문헌
김효경, 조선후기 간찰의 피봉 서식 연구, 고문서연구 31, 고문서학회, 2007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백낙천, 조선후기 한글간찰의 형식과 내용, 한말연구18, 한말연구학회, 2006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집필자 :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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