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조두석(趙斗錫 ) 간찰(簡札)

ㆍ자료UCI: KNU+GWKSMC+KSM-XF.1922.0000-20210501.202000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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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 : 조두석(趙斗錫)
· 작성시기 甲子(1922)
· 형태사항 29.0 X 42.8 | 1장 | 종이 | 한문 | 낱장
· 원소장처 원주 이정동
· 현소장처 원주 이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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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정보

이 문서는 1924년 1월 28일에 조두석(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한 간찰이다.
간찰의 작성목적은 반행(半行)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다. 조두석은 사돈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한 뒤 봄에 반행을 하고자 하는데, 사돈이 편한 날로 일정을 잡아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924년 1월 28일에 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書信・書札・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지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을 기록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候問・自敍・述事・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에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이 간찰도 이러한 양식을 맞춰서 작성하였고, 이를 통해 당대에도 조선시대 간찰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수신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두석이 자신을 '査弟'라고 하였는데, 사제란 사돈 사이에서 자신을 칭하는 말로, 이 단어를 통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사제는 '査小弟'・'査契'・'査丈'・'査生' 등과 같은 의미이다.
내용을 보면 조두석은 지난 겨울에 만난 뒤에 새해가 되었다며 심부름꾼을 통해 안부를 들었으나 인편에 간찰이 없어 한스러웠다며 간찰을 시작했다. 봄추위가 매서운 때에 사돈의 지내는 형편이 장중하고, 부모 모시면서 형제가 화목하며 사위와 자기 딸도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노부모를 봉양하여 새해를 맞이하니 연못가 얼음 위처럼 두렵지만, 아이들이 탈 없이 지내 기쁘다고 하였다. 서울로 간 아이는 10년 동안 객지에 있었으나 의지할만한 일도 없고 배운 것은 '請'과 '求' 두 글자 뿐이라고 하였다. 더욱이 친구들을 따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만류할 수 없어 어찌할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조두석은 딸과 봄에 중간 정도 거리에서 만나고[半行] 싶다면서 날짜는 사돈이 편한 날로 정하고 말과 마부[六足]를 부려도 된다고 하였다. 마침 동생이 지나가는 길이라서 인편에 대충 몇 자 적는다면서 정으로 살펴봐 달라고 하며 간찰을 마쳤다.
연관문서를 보면 몇 달 전인 1921년 11월에 조두석의 딸이 사돈의 집으로 于禮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례란 혼인을 한 신부가 처음으로 신랑의 집으로 가는 의례이며, 우례를 행하는 날을 于日이라고 한다. 조두석이 서두에서 사돈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지난 겨울이라고 하였는데, 이때가 바로 우일을 한 날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김효경, 조선후기 간찰의 피봉 서식 연구, 고문서연구 31, 고문서학회, 2007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백낙천, 조선후기 한글간찰의 형식과 내용, 한말연구18, 한말연구학회, 2006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집필자 :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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