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28년 11월 5일 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書信・書札・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지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을 기록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候問・自敍・述事・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에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이 간찰도 서두를 제외하였기만 이러한 양식을 맞춰서 작성하였고, 이를 통해 당대에도 조선시대 간찰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두석이 자신을 '査弟'라고 하였는데, 사제란 사돈 사이에서 자신을 칭하는 말로 이 단어를 통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사제는 '査小弟'・'査契'・'査丈'・'査生' 등과 같은 의미이다.
내용을 보면 조두석은 사돈이 지내는 형편이 좋고, 첫째 아들도 잘 지내며 둘째 아들도 모든 일이 부합된다고 하니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했다. 克도 탈을 면하고 잘 붙잡았는지 생각에 미치면 무익한 걱정만 늘어난다며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두 가지 자식 걱정으로 머리털이 빠져 겉만 남아있다고 하였다. 첫 번째 걱정은 딸에 대한 것으로, 딸이 지금 義城에서 지은 약을 먹고 있지만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고 大邱에서 주문한 약은 올해 다 먹지 못할 것 같다고 하였다.
두 번째 걱정은 약에 관한 것이다. 사돈에게 김 의원이 항상 그 곳에 있는지 물으며, 만약 대곡의 병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김 의원을 불러올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김 의원이 대곡의 병을 치료하고 있고, 딸과 비슷한 병증을 앓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머지는 바빠 줄이겠다며 간찰을 마쳤다.
연관문서를 통해 이 문서의 작성연도인 무진년은 1928년임을 알 수 있다. 조두석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은 모두 26건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간찰은 시기순으로 나열했을 때 25번째 문서이다.
참고문헌
김효경, 조선후기 간찰의 피봉 서식 연구, 고문서연구 31, 고문서학회, 2007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백낙천, 조선후기 한글간찰의 형식과 내용, 한말연구18, 한말연구학회, 2006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집필자 :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