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조두석(趙斗錫) 간찰(簡札)

ㆍ자료UCI: KNU+GWKSMC+KSM-XF.1928.0000-20210501.202000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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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 : 조두석(趙斗錫)
· 작성시기 戊辰(1928)
· 형태사항 23.7 X 33.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원소장처 원주 이정동
· 현소장처 원주 이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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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정보

이 문서는 무진년 9월 22일에 조두석(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이 간찰은 조두석대곡(大谷)의 병과 고쳐줄 마ᄄᆞᆼ한 사람에 대해 묻고, 의성에 있는 박준의(朴準宜)에게 아들을 보내는 일을 알리기 위해 작성하였다. 일전에 그 사람이 집을 방문했으나 조두석과 만나지 못했으며 간곳도 알지 못한다고 하였고, 어쩔 수 없이 자식을 의성에 있는 박준의에게 보냈다고 하였다. 대곡의 병세와 함께 마땅한 사람의 거처를 알아내어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고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928년 9월 22일에 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내용을 보면 일전에 몇 자 편지를 주시어 매우 고맙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였다. 그 안에 회답을 고대한 것은 大谷의 중병에 맞는 적당한 사람의 재주가 어떠한지를 알고 싶었는데 편지 끝에 이러한 말은 없었고 단지 6~7일 지나서 간다고 했으나 그가 왔다 간 것이 광풍처럼 지나간 듯하다고 하였다. 이어 일전에 조두석이 외출했을 때 그 사람이 문 앞에서 주인이 없자 바로 돌아갔는데 간 곳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이번 19일에 자식을 義城에 있는 朴準宜에게 보내게 했으며, 며늘아기를 아직 데려오지 않고 또 병자를 보내는 것은 발광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대곡의 병세는 근래 어떠한지 묻고 대곡의 병이 완쾌되었다하더라도 의원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혹시라도 이 의원의 거처와 대곡의 병이 나았는지를 알아내어 자세히 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간찰의 수신인은 조두석이 자신을 '査弟'라고 칭한 것으로 보아 사돈임을 알 수 있다. 사제는 사돈 간에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내용을 보면 대곡이라는 인물이 중병에 걸려 고쳐줄 적당한 사람을 찾고 있으나 마땅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의성에 있는 박준의에게 자식을 보냈는데 이는 며늘아기를 아직 데려오지 않았는데 환자를 또 보내면 발광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먼저 자식을 보내 박준의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와 관련한 '1926년 조두석 간찰'의 내용중에 산후병을 겪고 있는 여식이 의성의 의원을 소개 받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박준의에게 환자로 가 있는 며늘아기가 조두식의 여식이며 이 간찰의 작성연도는 1928년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이인숙, 조선시대 간찰의 문화사적 의의, 민족문화논총 제30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문창호, 簡札의 安否人事에 대한 類型, 東洋古典硏究 57, 동양고전학회, 2014
정진영, 조선후기 '간찰'자료의 존재형태, 역사와 경계 제102집, 부산경남사학회, 2017
집필자 : 정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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