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24년 8월 18일에 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조두석은 자신을 '査弟'라 지칭했는데 사제는 사돈사이에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이를 보아 간찰의 수신자는 사돈으로 보인다. 또한 연관문서를 통해 이 간찰의 작성연도인 갑자년은 1924년임을 알 수 있다.
지금 부모의 병환이 여러 달 동안 낫지 않아서 孔李간 주고받은 것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다고 하였다. 이어 뜻밖에 인편이 왔는데, 주신 편지가 정중할 뿐 아니라 물건으로 생선을 구비하게 도와주시니 매우 고마워서 사례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지내시는 형편이 좋다고 하시니 위로되지만 지난달에 아드님을 걸어서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려 근심하고 있고 매우 그립다고 하였다.
자신은 늙은 어버이의 병환이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그 기력이 나날이 쇠약해서 두렵다고 하였다. 동생 範과 龍兒가 병이 나서 10여일 머물렀다가 돌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가고 오는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며 편지에서 못한 것을 씻어내는게 어떠하겠냐고 묻고 간찰을 마쳤다.
간찰에 나오는 '공이'라는 표현은 후한 말 학자였던 孔融과 李膺처럼 가까운 사이를 말한다. 조두석이 사돈과 친밀한 사이임을 알 수 있는 표현이다. 또한 저번에 사돈이 간찰과 함께 생선을 보낸 것을 알 수 있고, 아드님을 지난달에 보냈다는 것으로 보아 사위가 조두석의 집에 머물다가 돌아간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를 보아 조두석이 신부 측 집안, 사돈이 신랑 측 집안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김효경, 寒喧箚錄에 나타난 조선후기의 간찰 양식, 서지학보 27, 한국서지학회, 2003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문창호, 簡札의 安否人事에 대한 類型, 東洋古典硏究 57, 동양고전학회, 2014
정진영, 조선후기 '간찰'자료의 존재형태, 역사와 경계 제102집, 부산경남사학회, 2017
집필자 : 정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