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21년 3월 23일 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書信・書札・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지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을 기록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候問・自敍・述事・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에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이 간찰도 이러한 양식을 맞춰서 작성하였다.
조두석이 자신을 이르러 '査弟'라고 한 것에서 수신인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사제란 사돈 사이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査小弟', '査契' 등과 같은 의미이다. 이를 통해 이 간찰의 수신인은 조두석과 사돈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을 보면 조두석은 꽃 피는 때 형편이 강건하고 伯氏의 기력이 연이어 좋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지 물으며 간찰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靑松(현재 경상북도 청송군)과 杞溪(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기계면) 등을 돌아다닌 소식이 들리지도 않고 40일 동안 西席[스승]에게 글을 보내주시 않은 이유를 물었다.
자신은 부모 모시며 지내는 형편에 손상이 더해지고 아이와 동생 소식이 끊겨 두렵고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사위가 도리를 단련한 노력을 인정할 수 있으나 짝 되는 사람이 재질을 헤아려 보는 요구를 잃어 한스럽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사위가 공부한 날을 많이 빠뜨렸다고 돌아가기를 재촉해 때에 맞춰 보내게 했다고 전했다. 지난번 심한 빌미를 겪어 겉모습만 남았으나 어쩔 수 없이 결국에 딸려 보내서 한탄스럽다고 하면서 간찰을 마쳤다.
연관문서를 통해 이 문서의 작성연도인 신유년은 1921년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조두석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은 모두 26건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간찰은 시기순으로 나열했을 때 2번째 문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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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백낙천, 조선후기 한글간찰의 형식과 내용, 한말연구18, 한말연구학회, 2006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집필자 :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