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24년에 11월 20일에 趙斗錫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書信・書札・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지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을 기록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候問・自敍・述事・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에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이 간찰 역시 양식에 맞춰서 작성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작성되었으나 여전히 조선시대 간찰의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두석이 자신을 '査弟'라고 하였는데, 사제란 사돈 사이에서 자신을 칭하는 말로 이 단어를 통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사제는 '査小弟'・'査契'・'査丈'・'査生' 등과 같은 의미이다.
내용을 보면 여러 달 동안 허둥대는 중이라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었는데 사돈댁의 인편이 간찰을 가지고 오니 위로되는 마음에 맞아 무슨 말로 사례하겠느냐는 말로 간찰을 시작했다. 조두석은 사돈의 형제가 두루 강녕하고 아들도 공부에 전념한다니 위로가 된다고 하면서 자신은 고생스런 산과 억겁의 바다와 같이 지내고 있다 하였다. 부모님의 환후가 낫지 않아 여러 방법으로 약을 썼으나 효과가 없고 잡다한 증세만 많으니 어찌 선약(仙藥)을 구하겠냐고 하였다. 연못가나 얼음 위에 있는 것처럼 두려우나 딸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멀리에서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나머지는 걱정되고 자리가 어수선해 이만 줄이겠다며 간찰을 마쳤다.
연관문서를 통해 이 문서의 작성연도인 갑자년은 1924년으로 보인다. 조두석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은 모두 26건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간찰은 시기순으로 나열했을 때 17번째 문서이다.
참고문헌
김효경, 조선후기 간찰의 피봉 서식 연구, 고문서연구 31, 고문서학회, 2007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백낙천, 조선후기 한글간찰의 형식과 내용, 한말연구18, 한말연구학회, 2006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집필자 :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