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중인 문서로, 1699년(숙종 25) 善山府에서 通德郞 李廣義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광의는 網障面 禮谷里 18통 2호에 거주하고 있으며 李廣運에서 이광의로 개명한 사실을 기재하고 있다. 이광의는 을묘(1675)생으로 나이는 25세이고 본관은 덕수이다. 이광의의 부친은 朝散大夫 顯陵參奉 李鼎華, 조부는 通政大夫 承政院右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李東溟, 증조부는 贈嘉善大夫 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副摠管 行通訓大夫 平昌郡守 原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李楫, 외조부는 通訓大夫 行平昌郡守 原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宋國龜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이광의의 처 金氏는 갑인(1674)생으로 나이는 26세이며 본관은 광주이다. 부친은 通政大夫 前行善山都護府使 金烏鎭兵馬僉制節使 金萬增이고, 조부는 資憲大夫 吏曹判書 兼弘文館大提學 知成均館事 同知經筵事 世子右副賓客 金益熙이며, 증조부는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 兼領經筵 弘文館春秋館觀象監事 世子師 行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成均館事 金槃이다. 외조부는 通訓大夫 行掌樂院僉正 朴世橋이고 본관은 금성이다.
아들과 딸을 함께 기재하고 있는데, 아들 李熊祥은 계유(1693)생으로 나이는 7세이고, 딸은 을해(1695)생으로 나이는 5세이다.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임에도 자식들을 준호구에 기재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소유한 노비는 仰役과 外居노비로 구분해 기재하고 있다. 앙역노비는 총 22구로 그 중 여자종은 11구, 남자종은 10구이며, 1구는 문서가 결락되어 성별을 알 수 없다. 외거노비는 총 64구로 여자종이 35구, 남자종이 29구이다. 주로 선산, 문경, 거창, 의령, 동래, 양산, 거제, 부여, 신창, 은진, 영광, 담양, 평창, 삼척 등에 거주하고 있다.
문서는 배접이 되어 있고, 결락된 부분에는 추가로 기재하였다. 行府使의 署押이 확인되고, 官印이 9개 찍혀 있으며 周挾肆改印을 찍어 문서에 수정한 곳이 4군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