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李琦永)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0000.4719-20160501.201500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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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이기영(李琦永)
수취 : 선산부(善山府)
· 작성지역 선산부
· 형태사항 80.5 X 52.6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장방형, 7.0*7.0, 善山府印)
1 (흑색, 장방형, 15.0*4.0, 周挾改印)
· 원소장처 선산 덕수이씨
· 현소장처 오죽헌시립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유학(幼學) 이기영(李琦永)이 18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기영경자생으로 본관은 덕수이다. 거주한 곳은 선산부(善山府) 망장면(望章面) 예곡리(禮谷里) 제1통 제2호이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幼學 李琦永이 18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기영경자생으로 본관은 덕수이다. 거주한 곳은 善山府 望章面 禮谷里이다.
이기영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李敏復이고, 생부는 유학 李敏述이며, 조부는 학생 李載喆이다. 증조부는 通德郞 李曙이고, 외조부는 학생 曺觀奎로 본관은 창녕이다. 이를 통해 이기영이민술의 아들이나 이민복의 양자가 되어 주호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부와 생부의 관계는 돌림자를 쓰고 있지만, 둘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알 수 없다.
문서에는 이기영이 소유한 노비를 기재하고 있는데, 총 25구가 기재되어 있다. 이 중 앙역노비는 22구이고 도망 노비는 3구이다. 기재된 노비 중 10구는 양부인 이민복 소유의 노비로 호를 이어가면서 노비를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 나머지 15구는 이 호구단자에 처음 기재된 노비로 그 중 12구는 물려받은 노비 10구의 소생들이다.
문서를 보면 호의 주소에는 朱墨으로 선을 그었고, 주호에 대해 기재한 항을 첫 머리에 朱點을 찍어 문서를 대조・확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호에 대한 내용은 列書하였고, 노비에 대한 내용은 連書하였다. 行府使의 署押과 官印, 周挾改印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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