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李琦永)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0000.4719-20160501.201500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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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이기영(李琦永)
수취 : 선산부(善山府)
· 작성지역 선산부
· 형태사항 49.0 X 57.1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장방형, 7.0*7.0, 善山府印)
· 원소장처 선산 덕수이씨
· 현소장처 오죽헌시립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선산부(善山府) 망장면(網障面) 예곡리(禮谷里)에 거주하고 있는 유학(幼學) 이기영(李琦永)이 33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의하면 이기영경자생이고 본관은 덕수이다. 처 평산신씨(平山申氏)와 함께 70세인 어머니 창녕조씨(昌寧曺氏)를 모시고 살았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幼學 李琦永이 33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의하면 이기영경자생이고 본관은 덕수이다. 善山府 網障面 禮谷里 제1통 제2호에 거주하고 있다.
이기영의 사조사항은 부친은 學生 李敏復이고, 생부는 通德郞 李敏述이며 조부는 학생 李載喆이다. 증조부는 통덕랑 李曙이다. 외조부는 학생 曺觀奎로 본관은 창녕이다. 생부의 기재사항을 통해 이기영이민복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부와 생부의 이름에 '敏'자가 기재된 것을 볼 때, 둘은 같은 항렬을 사용하는 동성친족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주호의 사조사항를 기재하는데 있어 독특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조사항의 경우 父, 祖, 曾祖, 外祖를 함께 기재하는데, 이 문서에서는 외조에 대한 사항을 모시고 있는 어머니를 기재한 뒤에 기록하고 있다.
이기영이 모시고 사는 어머니 昌寧曺氏계해생으로 문서를 작성할 당시 나이는 70세였다. 처 平山申氏는 35세로, 이 문서에는 출생간지가 기록되지 않았으나 연관문서를 통해 무술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기영의 자손에 대한 기록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이기영이 48세에 작성한 호구단자를 보면 아들 세 명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아들들의 나이가 어려 이 문서에서는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영이 소유한 노비는 총 15구로 奴 7구, 婢 8구이다. 이전 式年에 작성한 호구단자에서는 24구가 기록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 9구가 적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기록된 15구 중 13구는 이전 式年에도 기록된 노비이고 2구는 이 호구단자에 처음 기재된 노비이다. 또 도망노비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문서를 보면, 호의 주소와 주호와 주호의 사조사항, 모시고 사는 어머니, 처와 처의 사조사항에 대해 列書하였고, 소유하고 있는 노비에 대해서는 連書하였다.
行府使의 署押과 官印은 확인되나, 周挾改印은 찍지 않았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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