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39년(영조 15) 善山府에서 網障面 禮谷里에 거주하는 李廣義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광의는 을묘(1676)생으로 당시 나이는 64세이고 본관은 덕수이다. 이광의의 직역은 문서가 결락되어 있으나 연관문서를 통해 通訓大夫 行濟用監判官으로 추정된다. 통훈대부는 문관 정3품에게 수여한 직계이고 제용감판관은 제용감의 종5품 관직이므로 行守法에 의거하여 '行'자를 붙였다.
문서에는 이광의의 사조사항을 기재하고 함께 거주하는 가족구성원과 소유노비에 대해 기재하고 있다. 가족구성원으로는 첩 李氏, 庶母 朴氏, 아들 李壽海, 李德海, 李祥海, 李祿海, 李善海와 며느리 金氏, 손자 李春彬, 李亨彬, 庶弟 李廣孝, 李廣敎, 李廣信 등 13명이 확인된다.
첩 이씨는 44세로, 이씨에 대한 기재는 1732년 준호구에서 처음 확인되며, 1747년 준호구를 통해 신미생임을 알 수 있으나, 이에 따르면 이 문서의 나이와 차이가 있다.
서모 박씨는 당시 53세로, 박씨의 아들로 추정되는 이광효, 이광교, 이광신도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광효는 30세, 이광신은 23세이고, 이광교의 나이는 문서가 결락되어 있으나 연관문서를 통해 29세로 추정된다.
이광의의 아들 이수해는 직역이 持平이고 나이는 46세이며 이수해의 처 김씨는 24세이다. 김씨의 본관은 기재되지 않았다. 둘째 아들 進仕 이덕해는 나이는 30세, 셋째 아들 이상해는 29세, 넷째 아들 이녹해는 26세, 다섯째 아들 이선해는 22세이다. 이들은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
손자 이춘빈과 이형빈은 연관문서를 통해 이수해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이춘빈은 26세, 이형빈은 19세이다.
노비는 仰役과 外居로 구분하여 기재하고 있다. 앙역노비는 총 74구로 奴 45구, 婢 28구이고 문서의 결락으로 성별을 확인할 수 없는 노비가 1구 있다. 외거노비는 총 254구로 奴 129구, 婢 125구이다. 외거노비의 경우 성주, 청도, 대구, 영천, 김해, 동래, 울산, 선산, 상주, 개녕 등의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를 통해 이광의가 소유한 노비는 총 328구로 奴 174구, 婢 153구, 성별을 알 수 없는 노비 1구이다.
문서는 連書로 기재되어 있으며, 官印이 14군데 찍혀 있고, 行府使의 署押과 周挾改印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