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幼學 李敏復이 46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민복은 갑자생으로 본관은 덕수이다. 거주한 곳은 善山府 望章面 禮谷里 제1통 제2호이다.
문서에는 이민복의 사조와 처 昌寧曺氏 그리고 처의 사조에 대해 기재되어 있다. 이민복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李載喆이고, 생부는 학생 李恒信이며, 조부는 通德郞 李曙이다. 증조부는 通訓大夫 行工曹佐郞 李春彬이며, 외조부는 학생 宋志學이고 본관은 은진이다. 생부의 기재사항을 통해 이민복은 이재철의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외조에 기재사항을 통해 이민복의 모친은 恩津宋氏로 확인되는데, 은진송씨는 연관문서에 따르면 이서의 큰 아들인 李在愼의 처였다. 이름은 다르지만 주호인 이재철은 이재신과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처 창녕조씨는 계해생으로 당시 나이는 47세이다. 처의 부친은 학생 曺觀奎이고, 조부는 학생 曺煥明이며, 증조부는 학생 曺命文이다. 외조부는 학생 李義溥이며 본관은 한산이다.
이민복의 자손에 대해서는 기재하지 않았으나 연관문서에 따르면 李琦永이 이민복의 양자로 호를 이어가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민복은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민복이 소유한 노비는 앙역 노비와 도망 노비로 기재하고 있는데, 앙역노비는 총 14구이고 도망노비는 총 4구로 18구가 기재되어 있다. 앙역노비 중 남자종은 6구이고, 여자종은 8구이며, 도망노비 중 남자종은 3구이고, 여자종은 1구이다.
문서를 보면 주호인 이민복의 기재사항 첫 머리에 朱點을 찍어 확인 표기를 하였다. 行府使의 署押과 官印, 周挾改印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