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79년(고종 16) 幼學 安文德이 江陵大都護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문덕은 江陵大都護府 北二里面 聲谷里에서 처와 함께 살았다. 당시 안문덕의 나이는 43세이고, 생년은 정유(1837)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문서에 기재된 주호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安正詳이고, 조부는 학생 安鳴魯이며, 증조부는 及第 安處儉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恒九로 본관은 강릉이다. 1855년에 발급된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안문덕의 모친은 扶安張氏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이 문서에 기재된 안문덕의 외조가 강릉을 본관으로 하는 金恒九로 기재되어 있다.
안문덕의 처 金氏는 36세로 갑진(1844)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처의 사조사항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남자종 1口가 있는데, 이전 시기의 연관문서에서는 남자종의 나이를 기재했으나 이 문서에는 이름만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를 살펴보면 문서의 첫 행에는 발급한 해의 중국연호와 날짜 및 발급지역을 순서대로 기재했다. 그리고 행을 옮겨 본문을 작성했는데, 본문의 기두어가 '考丙子成籍戶口帳內'인 것으로 보아, 병자년(1876)에 성적한 호구장적을 참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문에는 주호의 인적사항, 사조사항, 가족사항을 列書했으며 노비는 행을 달리한 후 이격하여 기재하였고, 그 뒤로 戶口相準者를 기재했다.
문서를 보면 발급연도 위에 江陵府印을 두 군데 찍었고, 노비 기재사항 위에 戶口相準者印을 찍었으며 그 위에는 朱墨으로 '準'자를 적었다. 좌측 상단에 대도호부사의 署押이 확인된다.
주호가 살았던 북이리면 성곡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강릉시 교1동에 해당한다.
문서의 상단과 하단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보인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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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