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안석귀(安碩貴)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795.4215-20170501.201600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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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수취 : 안석귀(安碩貴)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乾隆六十年(1795)
· 형태사항 62.0 X 60.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4.0*4.5,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순흥안씨
· 현소장처 춘천 유용태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795년(정조 13)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에서 자헌대부(資憲大夫) 안석귀(安碩貴)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석귀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남일리면(南一里面) 김아기리(金牙只里) 제7통 제4호에 살았다. 문서에 기재된 가족사항은 처 정부인(貞夫人) 최씨(崔氏), 아들 업유(業儒) 안윤흡(安允洽) 내외, 손자 유학(幼學) 안처검(安處儉) 내외이다.
소유한 노비는 총 4구(口)가 있고, 그 중 1구는 병신년에 도망갔다.
안석귀 집안의 호구문서 중에 1795년에 발급받은 준호구는 2통이 현전하는데, 그 내용은 노비의 수가 1구 차이나는 것을 제외하면 기재 내용이 같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795년(정조 19)江陵大都護府에서 資憲大夫 安碩貴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석귀의 당시 나이는 97세로 기묘(1699)생이며, 본관은 순흥이고, 江陵大都護府 南一里面 金牙只里 제7통 제4호에 가족들과 살았다. 統首도 기재되어 있는데 통수는 盧漢郁이다.
문서에 기재된 안석귀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安壽慶이고, 조부는 通政大夫 安楗益이다. 증조부는 嘉善大夫 安奉吉이며, 외조부는 통정대부 金命相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이전 연관문서를 통해 안석귀의 직역이 老職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에서 자헌대부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처는 貞夫人 崔氏로 나이는 76세이며, 경자(1720)생이다. 최씨의 본관은 강릉이고, 사조사항은 다음과 같다. 부친은 가선대부 崔萬奉이고, 조부는 學生 崔鳳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文尙이다. 외조부는 가선대부 朴遇奉으로 본관은 밀양이다.
아들은 業儒 安允洽으로 57세이며 기미(1739)생이고, 며느리 江陵崔氏의 나이는 39세로 정축(1757)생이다. 손자는 幼學 安處儉으로 29세이며, 정해(1767)생이다. 손자며느리 旌善全氏는 30세로 병술(1766)생이다.
문서에 기재된 노비는 총 4口로 그 중 1구는 병신년에 도망갔다.
이 문서 외에도 같은 해에 발급된 준호구가 현전하고 있는데, 노비의 수가 1구 차이나는 것을 제외하면 같은 내용이다.
이 문서를 보면 첫줄에는 발급연도의 중국연호와 날짜를 기재했다. 그 다음 행을 옮겨 본문을 작성했는데 본문의 기두어는 '考乙卯成籍戶口帳內'라 기재되어 있어 을묘년(1795)에 작성한 호적문서를 참고해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에 주호의 거주지, 주호 내외의 인적사항과 사조사항, 가족사항을 連書했다. 본문 끝에는 壬子戶口相準者를 기재해 임자년(1792)의 문서와 대조해 작성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수령의 署押과 官印, 周挾改印을 찍었다. 문서가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전체적으로 변색되어 있고 구김이 많은 상태이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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