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70년(고종 7)에 江陵大都護府에서 幼學 安文德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문덕은 江陵大都護府 南二里面 魯巖里에서 처와 함께 거주했다. 이전 시기의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안문덕 가문은 南一里面 金牙只里에 살다가 1816년에서 1831년 사이에 南二里面 內谷里로 이주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855년부터 1864년 사이에 옥계면 북동리로 다시 이주했으며, 1865년에서 1870년 사이에는 南二里面 魯巖里로 터를 옮겼다. 이리면 노암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강릉시 강남동 일대에 해당한다.
안문덕의 당시 나이는 34세이며, 정유(1837)생으로 본관은 순흥이다. 안문덕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安正詳이고, 조부는 학생 安鳴魯이다. 증조부는 及第 安處儉이며, 외조부는 학생 金恒九로 본관은 강릉이다. 1855년의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안문덕의 모친은 扶安張氏로 기재되어 있으나 안문덕의 외조부는 강릉을 본관으로 하는 김항구로 기재되어 있다.
처 金氏는 을사(1845)생으로 당시 나이는 26세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원래 준호구에 주호의 사조뿐만 아니라 처의 사조까지 기재해야 하지만 이 문서에는 처의 사조가 생략되었다.
소유한 노비는 남자종 1口이며 나이는 20세이다.
문서에는 官印과 大都護府使의 署押 그리고 戶口相準者印이 확인된다. 기두어 위에는 朱點을 찍혀있고, 호구상준자인 위에는 朱墨으로 '準'자를 기재하였다.
문서 중앙 부분에 오염의 흔적과 문서 상・하단 끝부분에 불에 탄 흔적이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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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