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안문덕(安文德)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70.4215-20170501.201600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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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府)
수취 : 안문덕(安文德)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同治九年(1870)
· 형태사항 45.0 X 58.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3.5*7.0, 戶口相準者)
· 원소장처 강릉 순흥안씨
· 현소장처 춘천 유용태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70년(고종 7)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에서 유학(幼學) 안문덕(安文德)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안문덕은 34세로 정유(1837)생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안문덕강릉대도호부 남이리면(南二里面) 노암리(魯巖里)에서 처와 함께 거주하였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70년(고종 7)江陵大都護府에서 幼學 安文德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문덕江陵大都護府 南二里面 魯巖里에서 처와 함께 거주했다. 이전 시기의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안문덕 가문은 南一里面 金牙只里에 살다가 1816년에서 1831년 사이에 南二里面 內谷里로 이주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855년부터 1864년 사이에 옥계면 북동리로 다시 이주했으며, 1865년에서 1870년 사이에는 南二里面 魯巖里로 터를 옮겼다. 이리면 노암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강릉시 강남동 일대에 해당한다.
안문덕의 당시 나이는 34세이며, 정유(1837)생으로 본관은 순흥이다. 안문덕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安正詳이고, 조부는 학생 安鳴魯이다. 증조부는 及第 安處儉이며, 외조부는 학생 金恒九로 본관은 강릉이다. 1855년의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안문덕의 모친은 扶安張氏로 기재되어 있으나 안문덕의 외조부는 강릉을 본관으로 하는 김항구로 기재되어 있다.
金氏을사(1845)생으로 당시 나이는 26세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원래 준호구에 주호의 사조뿐만 아니라 처의 사조까지 기재해야 하지만 이 문서에는 처의 사조가 생략되었다.
소유한 노비는 남자종 1口이며 나이는 20세이다.
문서에는 官印과 大都護府使의 署押 그리고 戶口相準者印이 확인된다. 기두어 위에는 朱點을 찍혀있고, 호구상준자인 위에는 朱墨으로 '準'자를 기재하였다.
문서 중앙 부분에 오염의 흔적과 문서 상・하단 끝부분에 불에 탄 흔적이 보인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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