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13년(순조 13) 江陵大都護府에서 嘉善大夫 行龍驤衛副護軍 安允洽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윤흡은 江陵大都護府 南一里面 제5통 제3호에 처와 아들, 손자내외들과 살았다. 남일리면 제5통 統首는 羅夢致로 기재되어 있다.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 안윤흡은 75세로 기미(1739)생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안윤흡의 부친은 資憲大夫 同知中樞府事 安碩貴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安壽慶이다. 증조부는 通政大夫 安揵益이며, 외조부는 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崔萬奉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처는 貞夫人 崔氏로 나이는 57세이고, 정축(175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처의 사조는 기재하지 않았으나 1807년 연관문서를 통해 사조를 알 수 있다. 최씨의 부친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崔光烈이고, 조부는 安逸戶長 崔東錫이며, 증조부는 가선대부 행용양위부호군 崔文涑이다. 외조부는 學生 李点孫으로 본관은 평창이다.
아들은 出身 安處儉으로 나이는 47세이며, 정해(1767)생이다. 손자는 첫째 손자내외와 둘째 손자며느리, 셋째 손자가 기재되어 있는데, 첫째 손자는 幼學 安命朝로 개명 전 이름은 安秉璿이며, 나이는 27살이고, 정미(1787)생이다. 첫째 손자며느리 三陟金氏는 30세로 갑진(1784)생이다. 둘째 손자며느리는 江陵朴氏로 25세이며, 기유(1789)생이다. 문서에 둘째 손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연관문서를 통해 안윤흡에게는 손자가 세 명이 있었고, 그 중에 둘째 손자 安秉恒이 강릉박씨의 남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강릉박씨 이름 앞에 '寡'라고 적혀 있어 안병항은 사망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셋째 손자는 安命啓로 개명 전 이름은 安秉瓚이며, 나이는 17세이고, 정사(1797)생이다.
문서에 기재한 노비는 총 17口로 그 중에 1구는 병신년에 도망갔고 買得婢 1구가 새로 기재된 것이 확인된다.
문서를 기재한 방식을 살펴보면 먼저 첫 줄에는 발급연도의 중국연호와 날짜를 기재했다. 그 다음 본문을 작성했는데 '考癸酉成籍戶口帳內'를 기두어로 하여 계유년(1813)에 작성했던 호구문서를 참고해 발급했음을 밝혔다. 그 다음 주호의 거주지와 주호 내외의 인적사항, 주호의 사조사항, 가족사항을 連書한 뒤에 본문 끝에 庚午戶口相準을 기재해 경오년(1810)의 문서와 대조해 작성한 문서임을 밝혔다. 官印과 수령의 署押, 周挾改印 등이 확인된다.
문서의 보존 상태를 살펴보면 문서 우측과 중앙, 좌측상단 부분이 오염되어 있고, 열십자로 접은 후에 세로로 두 번 정도 접어 보관한 흔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