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안문덕(安文德)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64.4215-20170501.201600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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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수취 : 안문덕(安文德)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同治三年(1864)
· 형태사항 49.0 X 52.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4.0*4.5,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순흥안씨
· 현소장처 춘천 유용태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64년(고종 1)유학(幼學) 안문덕(安文德)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당시 안문덕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옥계면(玉溪面) 북동리(北洞里)에 처 강릉김씨(江陵金氏)와 함께 살았다.
소유한 노비는 남자종 1구(口)가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64년(고종 1) 江陵大都護府에서 幼學 安文德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문덕江陵大都護府 玉溪面 北洞里에 처 江陵金氏와 함께 살았다. 이전 시기의 연관문서들을 종합해보면 강릉 순흥안씨 가문은 南一里面 金牙只里에 거주하다가 1816년에서 1831년 사이에 南二里面 內谷里로 이주했고, 다시 1855년에서 1864년 사이에 옥계면 북동리로 이거한 것이 확인된다.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 안문덕의 나이는 28세로 정유(1837)생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부친은 學生 安正詳이고, 조부는 학생 安鳴魯이다. 증조부는 及第 安處儉이며, 외조부는 학생 金恒九로 본관은 강릉이다. 이전 시기의 연관문서에서 부친 안정상의 처는 扶安張氏이므로 이 문서에서 문덕의 외조부도 부안을 본관으로 하는 장씨 성의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문서에 기재된 안문덕의 외조부는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김항구가 기재되어 있다.
강릉김씨는 20세로 을사(1845)생이다. 일반적으로 준호구에는 주호 내외의 사조사항을 기재하는데, 이 문서는 주호인 안문덕의 사조만 기재하고 처의 사조는 생략했다.
문서에 기재된 노비는 남자종 1구로 이름은 億萬이며, 14세이다.
문서를 살펴보면 첫 줄에는 발급일자 및 발급처를 기재했다. 그 다음 행을 옮겨 考成籍戶口帳內를 기두어로 하는 본문을 작성했는데, 考자 옆에 참고한 호구문서를 작성한 해의 간지를 적지 않고 생략하였다. 그 뒤에 주호의 거주지와 인적사항 및 사조사항 그리고 가족사항을 列書했다. 이 다음 행을 바꾸어 이격한 후 노비를 기재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辛亥戶口相準라 적어 신해년(1851)의 호구문서와 대조하여 관이 인증했음을 밝혔다. 문서에는 江陵府印과 부사의 署押, 周挾改印 및 朱墨으로 적은 '准'자가 확인된다.
문서의 보존상태는 상단과 하단이 뜯어져 나간 것이 확인되고, 우측 상단과 하단에 불에 탄 흔적이 있으며, 가로로 한번 접은 뒤에 세로로 여섯 번 접어 보관한 흔적이 보인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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