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안윤흡(安允洽)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01.4215-20170501.201600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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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수취 : 안윤흡(安允洽)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嘉慶六年(1801)
· 형태사항 58.0 X 50.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江陵府印)
1 (흑색, 장방형, 14.5*4.5, 周挾字改印)
· 원소장처 강릉 순흥안씨
· 현소장처 춘천 유용태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01년(순조 1) 업유(業儒) 안윤흡(安允洽)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 안윤흡강릉대도호부 남일리면(南一里面) 김아기리(金牙只里) 제3통 제2호에 살았다. 가족은 모친 정부인(貞夫人) 최씨(崔氏)와 처 강릉최씨(江陵崔氏), 아들 유학(幼學) 안처검(安處儉), 며느리 정선전씨(旌善全氏), 손자 안백준(安百準), 안홍준(安弘準)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01년(순조 1) 業儒 安允洽江陵大都護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윤흡강릉대도호부 南一里面 金牙只 제3통 제2호에 모친과 처, 아들 내외, 손자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 통호에 統首도 기재되어 있는데 이름은 黃在坤이다.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 안윤흡의 나이는 63세로 기미(1739)생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안윤흡의 사조는 부친 資憲大夫 同知中樞府事 安碩貴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安壽慶이며, 증조부는 通政大夫 安楗益이다. 외조부는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崔萬奉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주호가 모시고 있는 모친 貞夫人 崔氏의 나이는 82세로 경자(1720)생이다. 처 江陵崔氏는 45세로 정축(1757)생이고, 처의 사조는 다음과 같다. 부친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崔光烈이고, 조부는 安逸戶長 崔東錫이며, 증조부는 가선대부 행용양위부호군 崔文涑이다. 외조부는 學生 李点孫으로 본관은 평창이다. 처의 조부 최동석의 관직인 안일호장은 각 지방 관아의 향리에서 은퇴한 이에게 호장 직무를 겸임한다는 뜻으로 내려준 일종의 명예직이다.
아들 出身 安處儉은 35세로 정해년(1767)생이고, 며느리 전씨는 36세이며, 병술(1766)생이다. 문서에는 전씨의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연관문서를 통해 정선임을 알 수 있다. 손자 安百準은 15살이고, 정미(1787)생이다. 둘째 손자 安弘準은 12살이며, 경술(1790)생이다. 문서에 기재된 두 명의 손자 외에 한 명의 손자가 더 있는데, 이름은 安秉瓚으로 당시 나이는 5살이며, 정사(1797)생이다. 이 문서에서 손자 안백준안홍준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호구문서에 기재되어 있는데, 대개 20살이 넘거나 결혼을 해야 호구문서에 등호시키던 당시의 양상과 달라 흥미로운 부분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6口가 있는데, 그 중 남자종 1구는 병신년에 도망갔다.
이 문서를 보면 첫줄에 발급연도의 중국연호와 날짜를 기재했다. 그 다음 행을 옮겨 본문을 작성했는데, 본문의 기두어가 '考辛酉成籍戶口帳內'인 것으로 보아, 신유년(1801)에 작성한 호구문서를 참고해 발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뒤에 주호의 거주지, 가족사항, 주호내외의 사조사항을 連書했으며, 본문 마지막에는 戊午戶口相準者라 기재하여 무오년(1798)에 발급한 문서와 대조해 작성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수령의 署押, 周挾改印, 官印이 확인된다. 이외에도 주협개인 위에 朱墨으로 '準'자를 적었다. 문서의 보존상태는 우측 중앙부분에 약간의 오염이 보이고 세로로 여러 번 접어 보관한 흔적이 있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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