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안정교(安正敎)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46.4215-20170501.201600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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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府)
수취 : 안정교(安正敎)
· 작성지역 강릉대도호부
· 작성시기 道光二十六年(1846)
· 형태사항 44.5 X 49.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江陵府印)
1 (흑색, 정방형, 14.5*4.0, 周挾改印)
· 원소장처 강릉 순흥안씨
· 현소장처 춘천 유용태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46년(헌종 12)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에서 유학(幼學) 안정교(安正敎)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정교강릉부(江陵府) 남이리면(南二里面) 내곡리(內谷里)에 모친 삼척김씨(三陟金氏)와 처 부안장씨(扶安張氏)와 함께 거주했다. 문서에 기재되진 않았으나, 연관문서를 통해 아우와 아들도 함께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우는 안정순(安正詢)으로 계사(1833)생이며, 당시 나이는 14세였다. 아들은 안문덕(安文德)으로 정유(1837)생이고, 당시 나이는 10세였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46년(헌종 12) 幼學 安正敎江陵大都護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정교와 가족들은 江陵府 南面二里 內谷里에 살았는데, 南面二里南二里面의 오기로 보인다. 이전 시기의 연관문서를 통해 이 가문은 1816년에서 1831년 사이에 南一里面 金牙只里에서 지금의 거주지로 이거하였다. 안정교정축(1817)생으로 당시 나이는 30세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安鳴魯이고, 생부는 出身 安養魯이다. 조부는 及第 安處儉이며, 증조부는 嘉善大夫 行龍驤衛副護軍 安允洽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在說으로 본관은 삼척이다.
모친 金氏갑진(1784)생이고, 당시 나이는 63세이며, 본관은 삼척이다. 연관문서인 1843년 준호구에는 생부와 생모가 가족으로 기재되었으나, 이 문서에서는 생부가 사조사항에 기재되어 있는 점과 생모가 누락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생부・생모는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안정교의 처는 張氏갑신(1824)생이고, 나이는 23세로 본관은 부안이다. 처의 사조는 생략되었다.
문서에는 기재되지 않았지만 강릉 순흥안씨 가문의 연관문서인 1855년1864년의 준호구를 통해 아우 安正詢과 아들 安文德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정순계사(1833)생이고, 나이는 14세이며, 안문덕정유(1837)생으로 10세였다.
문서에 기재한 노비는 총 10口로 그 중에 3구는 병술년 2월에 도망갔다. 노비의 나이는 간지로 기재했다.
이 문서를 살펴보면 첫 줄에는 발급연도와 날짜 그리고 발급한 지역을 적었다. 그 다음 행을 옮겨 본문을 작성했는데, 본문의 기두어가 '考癸卯成籍戶口帳內'인 것으로 보아, 강릉부에서 계묘년(1843)의 호구문서를 참고해 발급해준 것을 알 수 있다. 그 뒤에는 주호의 거주지, 사조사항, 인적사항, 가족사항을 列書하고 노비는 連書했다. 그리고 문서 마지막에 戶口相準者라 기재해 관의 인증을 받은 문서임을 밝혔다. 이외에도 官印, 대도호부사의 署押, 周挾改印, 朱墨으로 기재한 '準'자가 확인된다.
문서의 보존상태를 보면 먼저 우측 하단부가 刀割되었고, 우측 부분과 좌측 상단이 오염되어 있다. 또한 세로로 세 번 접어 보관한 흔적이 있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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