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73년(고종 10) 江陵大都護府에서 幼學 安文德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안문덕은 江陵大都護府 南二里面 魯巖里에 처와 함께 거주하였다. 안문덕은 정유(1837)생으로 당시 나이는 37세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安正詳이고, 조부는 학생 安鳴魯이다. 증조부는 及第 安處儉이며, 외조부는 학생 金恒九로 본관은 강릉이다. 1855년 연관문서를 살펴보면 안문덕의 모친은 扶安張氏인데, 이 문서에는 주호인 안문덕의 외조가 강릉을 본관으로 하는 김항구로 기재되어 있다.
처 金氏는 을사(1845)생으로 나이는 29세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원래 준호구에는 처의 사조를 기재해야 하지만, 이 문서에서는 기재하지 않았다.
소유한 노비는 남자종 1口로 이름은 億萬이며, 나이는 23세이고 ,신해(1851)생이다.
이 문서를 살펴보면 문서 첫 줄에 발급한 해의 중국연호와 날짜 및 발급지역을 기재했다. 그 다음은 행을 옮겨 본문을 작성했는데 '考庚午成籍戶口帳內'라고 기재한 기두어를 통해 경오년(1870)에 성적한 호구장적을 참고해 발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다음 본문의 내용으로 주호의 거주지, 주호의 인적사항, 사조사항, 가족사항을 기재했다. 본문 마지막 줄에는 행을 옮겨 다른 기재사항보다 아래쪽에 소유노비에 대해 기재하고, '戶口相準者'를 적어 관에서 대조하여 인증한 것임을 밝혔다. 이외에도 문서에 江陵府印, 戶口相準者印, 大都護府使의 署押 및 朱墨으로 적은 '準'자와 기두어 위에 찍은 朱點을 확인할 수 있다.
문서에는 세로로 세 번 접어 보관한 흔적이 있으며, 접힌 상태에서 오염된 흔적이 문서 하단 부분에 나타났다. 또한 상단과 하단에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고, 문서 우측 하단 일부는 소실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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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