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 2일 琴瑞淵이 사돈에게 보낸 답장이다.
편지의 작성시기는 '戊人'이라고 기재하고 있지만 이는 戊寅의 오기로 보이고, 연관문서를 통해 1938년에 작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편지는 삼가 절하고 답장을 올린다는 말로 시작하여 답장임을 알 수 있다. 후문에서는 5월 이후에 몇 차례 말로 안부 인사를 받았으나 편지로 문안을 올리지 못해 그리웠는데 형님께서 편지를 보내주셔서 고맙다고 전하며 이제 답장을 하고 얼마 후면 중양절인데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아드님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은지 그립다고 하여 안부를 묻고 있다. 이어 자신은 여전히 불안할 뿐이지만 대야가 이곳에 온지 초하루가 지났으니 전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뜻이 없다고 하며 기특하다고 하였다.
편지의 핵심내용인 술사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혼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箕一집안에 대해 자신이 이미 여러 번 간략하게 설명을 했으나 신랑이 미루다가 결정을 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서 신랑이 이제야 움직인 것에 대해서 용서를 권유했으니 당신께서는 基洛에게 청하여 상의해서 혼인이 이루길 바란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말씀하신 것 중에 潢池를 유람하는 일은 자신처럼 칩거하는 사람과 함께 즐기기 바라고 있다.
이어 별지에 시를 썼지만 말이 졸렬하고 필체가 옹색해서 원래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형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쓴 이유를 설명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별지에 쓴 편지는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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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조선시대 편지[簡札]의 문화사적 의의, 민족문화논총 30,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