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4월 2일에 琴瑞淵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간찰의 발신인이 본지에 내용을 작성할 때 공간이 모자라면 본문의 위쪽 여백에 이어서 쓴다. 위쪽 여백도 다 사용하였으면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고, 이 이상 내용을 작성할 경우에는 본문 행간에 쓰기도 한다. 이렇게 본문 여백에 내용을 돌려가면서 쓰는 것을 '回文'이라고 하며, 이 간찰 역시 회문식으로 작성되었다.
금서연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신이 상을 당했을 때 사돈이 두 차례나 위로해준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사돈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아들이 9살부터 객지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며느리가 아파 슬퍼하는 걸 보니 통탄스럽지만 大也가 최근 탈이 없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산소는 선영 내에 마련한 땅에 임시로 두었으나 나중에 옮기는 날에 구애가 될 것이 있을지 염려스러우며, 사돈이 부조를 넉넉하게 보내주시어 감사함과 동시에 근심을 드려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사돈이 오는 보름쯤에 위문 온다고 하니 날을 정해 태백산으로 유람을 가 감회를 풀자고 제안하면서 손님 때문에 편지를 마친다고 인사하였다. 서로 떨어져 있으나 1년에 몇 차례씩 틈을 내어 보니 호사라고 덧붙였다.
금서연은 사돈과 淸和節[4월]에 유람을 가고 싶다며 태백산의 명승지를 열거하였다. 黃池는 강원도 태백시 시내에 있는 못으로 각종 지리지에서 낙동강의 발원지로 소개하고 있다. 穿川穴淵은 현재의 구문소로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에 있으며 황지천이 자연 암반을 침식시켜 구멍을 뚫은 곳이다. 牛口峙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에 있는 고개로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으며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을 잇는다. 우구치에는 일제강점기 때 金井鑛山이 있어 금을 채굴했는데 지금은 폐광되었다.
참고문헌
김효경, 조선후기 간찰의 피봉 서식 연구, 고문서연구 31, 고문서학회, 2007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임병권 외, 조선 한문간찰의 존경 겸하 표시 부호 연구, 대동문화연구 94,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6
집필자 :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