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34년 7월 13일 琴瑞淵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큰 홍수를 겪은 뒤 바로 편지를 보내 대면하는 것을 대신하려 했으나 길이 조금 멀고 인편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핑계로 여기에 이르러 부끄럽다며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무더위가 몹시 심한 이때 부모 모시며 지내는 형편이 어떤지, 형제들과 아들, 同堂, 어린 형제도 잘 지내는지 근황을 물었다.
자신은 여름 동안 순조롭지 못했는데, 일전에 손녀딸을 얻어 지금은 별 탈 없이 크고, 산모와 딸도 별고 없다고 하였다. 다만 모기의 괴로움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아들은 휴가로 집에 돌아와서 보았지만, 다음날 本校 지도 때문에 교외실습이라 하여 乃城砂防事務所에 갔다가 수십 일이 지나 어제서야 집에 돌아왔다고 하였다. 사돈댁에 몇 년 동안 가지 못했으니 이번에 잠시 보내려고 하는데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없어 오고 가는 것이 근심된다고 하였다.
이번 여름 水害가 대단하여 저희 농장도 피해가 적지 않아 作人을 시켜 일을 시작했는데, 하천 막는 일을 지휘하느라 틈이 없다고 하며, 그쪽 농장은 어떤지 알고 싶다며 편지를 마쳤다.
본문에 언급된 내성사방사무소는 내성 지역의 사방사무소로 내성은 현재 경상북도 봉화군의 서부 지역이며, 사방사무소는 바위나 흙・모래가 바람과 비로 인해 쓸려 생겨나는 재해를 막거나 줄이기 위한 토목공사인 사방을 위한 사무소이다. 1934년은 일제강점기 때 제1기 국비사방사업(1922~1934)의 마지막 해로, 사방사무소는 1930년을 전후로 하여 전국에 설치되었다.
간찰의 내용에 수신인에 대한 정보는 없으나 금서연이 자신을 '査弟'라고 지칭하고 있어 사돈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보낸 날짜는 갑술년으로 되어 있으나 금서연의 다른 편지를 통해 갑술년이 1934년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