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 7일 琴瑞淵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이다.
편지의 작성연도는 '丙子'로 기재되어 있으나 편지의 내용 중에 면사무소와 순사 숙소에 대한 내용이 있어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작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금서연이 자신을 '査弟'라 기재하고 있어 수신인과는 사돈지간임을 알 수 있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금서연은 먼저 소식이 끊긴지 오래되었는데 갑자기 주신 편지를 받으니 만나서 이야기를 한 듯 황홀하고 고맙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이 편지는 금서연이 사돈의 편지를 받고 쓴 답장임을 알 수 있다. 이어 사돈 집안의 안부를 물으며 규 모자가 근심을 끼치는 것은 예상된 것이지만 마음이 썩고 편안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시시한 얘기에 속한다고 하고, 그 증세와 의사의 진찰 내용을 물으며, 사돈어른에게 客擾라고 하더라도 잘 치료하게 해서 완치된다면 다행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는데 자신은 별 일이 없지만 멀리 유학 간 동생이 지난 달 보름쯤 아프다는 전보가 와서 걱정하였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는 소식을 들어 근심이 조금이나마 풀렸다고 하였다. 다만 밭농사와 논농사의 형편이 좋지 않음을 전하고 있는데 상세한 내용은 이른 시기에 가뭄을 겪었고, 나중에는 수재를 입었으니 가을걷이가 근심이 된다고 하였다. 더구나 금서연이 살고 있는 지역의 면사무소 소재지는 십여 채의 가옥이 잠겨 무너지고 여러 명의 인명이 죽거나 다친 소식을 전하였다.
또한 지금 면사무소와 순사 숙소를 이전하여 짓고 있었는데 徐役, 寄付, 指名 부담이 심하게 많으니 이 때문에 파산한 것을 구제하기도 부족한데 이제 남은 힘으로 제 목숨을 보전하기도 어렵다며 용건을 마치고 있다.
추신으로 농토 3곳 외에 경작하는 700~800평 모두 손상을 입었고, 듣고 싶다는 말씀은 나중에 언급하겠다고 하였다.